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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가훈 만들기|한기천 <문예진흥원 국제사업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내가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으로부터 소식지에 싣는다고 가훈과 가족사진 한장을 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며칠 내로 달라는 것을 보니 가훈 정도는 어느 가정이나 다 있겠거니 생각한 모양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결혼 8년째지만 가훈은커녕 1년에 한번이라도 가족끼리 모여 가정일을 민주적으로 협의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느날 온 가족이 모이는 별도의 자리를 마련했다.
가족이래야 아내와 일곱살난 아들, 이렇게 3명뿐이지만….
결혼 후 처음으로 3자가 참여한 가족 회의가 화기애애하게 진행된다.
『가훈이 뭔데?』
아들녀석도 끼어들더니 오늘의 주제를 파악했는지『아빠, 엄마가 무조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희망사항을 요구한다.
우리는 「가훈」 대신 「우리 가정의 약속」이라는 쉬운 말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약속」은 식구들이 언제나 뜻만 모아지면 수시로 할 수 있으니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의견을 집약했다.
「윤기있는 생활」
「함께하는 생활」
「배우며 감사하는 생활」.
그런데 5월5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울산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친구와 함께 초청 받았다.
『여보, 내가 4일에 떠나 5일 돌아올 것 같아. 이번 어린이날은 조용히 지내는 거야.』
아내에게 지나가는 말로 무심히 얘기를 던지자 『그럼 잘되었어요. 비행기 타고 갈 거 아녜요. 누리가 TV를 볼 때마다 비행기 타 보는 것이 소원이랬는데』하며 가훈 중 「함께 하는 생활」을 언급한다.
옆에 있던 누리까지 환성을 질러대는 것이었다.
『그래, 우리의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지. 누리 비행기 태워줄게.』
마지 못해 행동에 옮겼지만 가정의 작은 변화조차 고통이 따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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