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자들 '자책감 쇼크' 빠질 수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0호 05면

이수정 교수 경기대·범죄심리학

탈레반에 인질로 잡혀 있는 22명의 봉사단원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극도의 긴장, 불안감과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들을 신체적·정신적으로 괴롭힌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모두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어서 일반인보다 잘 견딜 것이라는 점이다.

"나 때문에 사건 발생" 심리적 부담 … 풀려난 뒤에도 불안장애 우려

인질로 잡힌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심리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스톡홀름 신드롬이 있다. 인질이 오랜 시간 잡혀 있다 보면 범인들과 심적인 유대감이 형성돼 자신도 모르게 범인들에게 협조적이 되는 현상이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서 발생한 강도사건에서 인질 중 한 명이 범인이 검거된 뒤에도 범인을 두둔하고 극도의 애착을 보이는 태도를 보인 데에서 유래했다. 생명을 위협받는 극한상황에서의 불안감이 왜곡된 심리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인질들은 억류 도중에는 물론이고 풀려난 뒤에도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겪는다.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다. 이것은 일종의 불안장애로 생명을 위협받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을 때 나타난다. 증상으로는 불면증·분노 폭발·집중력 감퇴·놀람 반응 등 과민상태가 지속된다. 우울·불안·집중력 저하·흥미상실 증상도 동반한다. 부정기적인 피로감과 소화불량·두통·근육통 같은 신체 증상과 환영(幻影)·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대규모 재난과 위기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일부 인질은 이번 사태가 자기 때문에 비롯됐다는 자기 비난과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 특히 납치된 동료 가운데 생명을 잃은 사람이 있을 경우 본인 탓이라는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 비난과 죄의식이 깊어지면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피해자들이 예전의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건이 발생한 뒤 3개월 이내에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몇 달, 심하면 몇 년 뒤에 나타나기도 한다. 사건의 심각성, 사건의 기간, 사건의 근접도가 장애가 나타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다.

피랍자 못지않게 가족들도 정신불안 증세를 보일 수 있다. 협상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가족들은 극심한 분노를 보이는 동시에 죄책감에 시달린다. 따라서 사태가 수습되면 피랍자와 가족 모두 일정 기간 정신상담 등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