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적진서 조종사 구출하는 '붉은 베레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0호 06면

공군 탐색구조팀 대원들이 가장 적진에 침투해 조종사를 구출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2007년 5월 9일 오전 9시33분. 강원도 영월군 웅진리 남한강 강변. 공군 구조헬기 블랙호크(HH-60)가 25m 상공을 맴돌았다. 강변의 하얀 모래가 흩날렸다. 헬기에서 탐색구조팀 1개조 5명이 로프를 타고 사뿐히 착지했다. 거미가 거미줄을 타고 내려오는 듯했다. 50㎏의 완전무장에 소총까지 들고서다. 자칫하면 허리를 삔다.

Mission Impossible ① 공군 탐색구조팀

공군 탐색구조사는 전투기에서 비상 탈출해 적진에 고립된 조종사를 구출하는 게 임무다. 이날 훈련은 청주기지에서 공군 구조헬기를 타고 가상의 적진에 침투해 조종사를 구출하는 것이었다. 목숨을 걸고 적진에서 조종사를 구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종사가 적에게 체포되면 엄청난 정보가 넘어갈 수 있어 아군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조종사를 양성하는 기간도 길고, 비용도 한 명당 60억원이나 든다.

탐색구조팀의 생명은 은밀성이다. 적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 추락한 조종사와는 사전에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구조팀 5명은 구조사 2명과 정비사 1명, 헬기 조종사 2명 등 5명으로 구성된다. 훈련이지만 반드시 구출에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일까. 모두 긴장된 모습이었다.

구조대원들이 군용지도와 인터넷 위성사진을 펴놓고 구조 계획을 점검하고 있다.

구조대원들은 군용지도와 인터넷 위성사진으로 구조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산세는 한눈에 봐도 험했다. 구조팀은 2박3일분의 비상식량, 탄약 50발, 수류탄 한 발, 소량의 물, 군용 칼, 응급키트를 휴대했다. 구조대 선임인 김선표 상사는 “성공적인 작전을 위해 실전처럼 훈련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해 바다에서 조난당한 미 공군 조종사를 구출했던 이충호 상사는 “구조대가 있어 조종사들이 마음 놓고 비행에 나설 수 있다”며 “구조대는 24시간 대기한다”고 했다.

같은 날 정오. 조난당한 조종사가 영월군 솔밑마을로 몸을 숨겼다. 조종사 역은 역시 탐색구조사인 안대환 하사가 맡았다. 안 하사는 생환복을 입고 있었다. 전투기 조종사가 항상 착용하는 복장으로 작전지역의 지도와 칼, 무전기(PRC-90), 신호용 유리거울 등이 들어 있다.

구조대원들은 4시간이나 걸었다. 매복한 적을 피하기 위해 등산로와 떨어져 행군을 해야 했다. 점심은 비상식량 비빔밥으로 대신했다. 쌀은 불었고 비빔밥 안에 든 당근의 맛을 느낄 수 없었지만 대원들은 한 봉지를 뚝딱 비웠다.

구조대 일행이 조종사와 접선하기로 한 시간은 오후 4시. 접선 지점 좌표는 DG612050. 영월군 남한강 인근 야산이었다. 오후 4시13분. 드디어 접선 장소에 도착했다. 김 상사는 소지한 붉은 베레모를 작은 돌 위에 올려놓았다. 정용민 상사는 “훈련이지만 이때가 가장 긴장된다”고 말했다. 접선 지점이 적군에 노출될 수도 있고, 조종사가 적군에게 납치됐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레모를 올려놓자마자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10여 분이 흘렀다. 그러자 조종사 역을 맡은 안 하사가 나타나 베레모 위에 작은 손수건을 올려놓는다. 조종사와 탐색구조대는 작전에 나가기 전에 이런 약속을 해둔다. 만약 30분이 지나도록 조종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음 접선 지점으로 신속하게 이동해야 한다.

조종사와 합류한 구조팀은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30분 늦게 숙영지에 도착했다. 갑자기 비가 내린 데다 어두운 산길을 탔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대원들은 구조헬기(HH-32) 도착 예정 지점으로 이동했다. 숙영지에서 1㎞ 떨어진 곳이다. 도착 예정 시간은 오전 10시30분. 대원들은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적 지역을 벗어나 아군 지역으로 들어왔지만 적이 나타날 수도 있어서다. 잠시 후 구조헬기 1대와 무장헬기 1대가 산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헬기와 접촉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조종사는 별 모양이 뚫린 작은 거울로 위치 신호를 보낸다. 잠시 후 신호를 포착한 구조헬기가 내려앉았다. 구조대원들은 헬기를 둘러싸고 조종사가 헬기에 탈 수 있도록 엄호했다. 가장 먼저 적진에 뛰어들어 구조하고 가장 마지막에 적진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김 상사가 헬기에 올랐다. 작전 성공.

탐색구조사가 되기 위해서는 공군하사관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양성교육은 5년 정도다. 응급치료법, 탐색구조 비행훈련, 낙하산 강하훈련, 잠수(SCUBA)훈련, 산악구조, 빙벽 오르기, 생환훈련 등이다. 이 과정에서 절반이 탈락한다. 30m 이상의 심해 잠수와 4㎞ 이상의 장거리 수영을 통과해야만 탐색구조사의 상징인 붉은 베레모를 쓸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70명의 부대원은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아는 사이가 된다. 구조사들의 하루는 훈련으로 시작해서 훈련으로 끝난다. 한 해 3분의 1 정도를 외부에 나가 있는다.

공군 탐색구조대 연병장 앞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내 곧 가리라/어둠과 절망 속에 있는 그들을 위해,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뜻과 힘을 모아/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리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