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과 어머니의 편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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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10면

"널 보내고 돌아서면서 가슴 아파 숨쉴 수 없었는데…”

보고 싶고 사랑하는 아들!
오늘은 기온이 많이 올라 덥다는데 훈련받기 힘들겠구나. 그치만, 넌 건강하고 씩씩하고 무엇보다 엄마 아들이니까 잘 견디겠지. 어제 홈피에 올라온 네 사진을 보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밝고 환한 네 모습! 넌 역시 엄마, 아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어.

어젯밤 아빤 네가 그리웠는지 아들 방에서 주무셨단다. 네 냄새가 그리웠나 봐. 재륜아! 철들고 넌 우리랑 지낸 시간보다 너 혼자 지낸 시간이 더 많아 엄만 항상 미안했단다. 그러면서도 네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 건 엄마의 욕심인지도 모르지만, 네게 자립심도 키워주고, 험한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널 강하게 키우고 싶었었는데….

넌 이런 엄마가 야속했으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나랑 의견충돌이 있었을 때 네가 한 말을 엄만 잊어버릴 수가 없다. 지금까지 엄마에게 칭찬 한번 들어보지 못했다고…. 어떻게 해야 엄마 맘에 들 수 있는지…. 그 말에 난 칭찬할 게 뭐가 있느냐고 했지만, 내 맘은 그게 아니었단 걸 알아주기 바란다.

엄마 아들 재륜아!
널 키우면서 엄마가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행복하고, 기쁜 일이 많았는지….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똑똑하고 귀여운 너를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칭찬할 때 엄마 아빠는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불안한 맘. 이게 바로 엄마의 맘일 거야. 남들이 너무 부러워하고 칭찬하는데 엄마 아빠까지 그러면 혹시 네가 자만하지는 않을까 하고….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역시 기우였어.

넌 역시 엄마 아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으니까…. 이젠 아빠랑도 술 한잔 하면서 대화할 수 있을 만큼 훌쩍 커버려 가끔은 우릴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두려운 맘도 없진 않지만, 늘 지금같이만 하는 아들이 되어 엄마 아빠 곁에 있어준다면 두려울 것도 없겠지….

재륜아! 이번에 널 보내고 돌아서면서 가슴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을 만큼의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이젠 모든 걱정을 접어두고 엄마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밝고, 씩씩하고, 이쁜 아들 모습 보고….

엄마 아빤 아들이 하루하루 보람 있는 군생활을 하고, 돌아올 땐 더 멋지고, 훌륭한 아들이 되어 오리라 믿는다. 항상 조심, 또 조심하고, 건강하고, 선배님 말씀 잘 듣고, 사랑받는 재륜이가 되고, 동료들과는 항상 이해하고 양보하는 아들이 되길…. 또 연락할게.

 만날 날 손꼽아 기다리며 엄마가 

“어리고 나약했던 시절…이젠 멋진 아들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께
어느새 부모님의 곁을 떠난 지도 2주일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안 별일 없으셨는지요?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염려 덕분에 항상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제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쏟아지려는 눈물을 겨우 참아내며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말밖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전 어머니, 아버지와 의견충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하고는 했었지요.
‘고등학교 때부터 떠나 있어서 아직도 부모님은 절 중학생 취급하십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6년이 지나서야 저 스스로가 중학생이었음을, 어른인 척했지만 한없이 어리고 투정밖에 모르는 나약한 외동아들의 모습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칭찬 한번 들어보지 못했었다는 말…. 지금 와서 생각하면 왜 이렇게 유치한 걸까요.

왜 곁에 있을 때 잘 해 드리지 못하고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으면서, 이제 와서 이해하는 것처럼, 효자인 것처럼 편지를 쓸까요…. 아직도 한없이 모자라고 어려서 그런가 봅니다.
염치가 없어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부모님!
군대 가기 전, 저를 앉히고는 이런 말씀을 하셨죠. “어디 가서든 마찬가지겠지만 나서지 말고,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말고, 남들 사이에서 적당함을 지키거라.”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셨지요. “만약 남들 앞에서 무엇을 하게 되었거나 어떤 일로 네가 도드라져 보이게 되었다면, 그때에는 최선을 다하거라.” 이 말씀들이 지금의 제게는 군생활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말도 잘 안 듣고 청개구리처럼 굴던 아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지침으로 삼았다고 하니, 많이 놀라셨죠? ^-^?제가 원할 때마다 뵐 수 없고 연락할 수 없게 되자 이렇게 부모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제 머릿속에 남아 깊게 각인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말을 잘 들었었더라면, 아버지의 흰 머리 하나, 어머니의 주름 하나라도 줄이고 군대 오는 건데 하는 후회가 남습니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소중한 내 아들’이란 말에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요.
어릴 적 고생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한이 되어, 내 자식을 고생 안 시키고 원하는 것 다 해주고 싶으셨다는 부모님. 그런 말은 흘려들은 채,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멋대로 판단하며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용하고는 했지요. 정말 죄송합니다….

못난, 어리석은 아들이 부모님의 넓은 마음 한 자락도 헤아리지 못하고 잡지도 못한 채,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려고 이곳에 홀로 섰습니다. 하지만 전 혼자가 아님을 믿습니다. 언제나 뒤에서 든든하게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넓은 가슴과 마음, 그리고 사랑을 믿습니다.

백일 휴가 때에는 큰절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선 “넌 이제 2년간 내 아들이 아니라 대한의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대한의 아들이기 이전에 자랑스러운 아버지 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 이재륜임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외쳐봅니다.
아버지, 어머니, 백일 뒤에 당당하고 멋진 아들이 되어 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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