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전총리 자살이 주는 교훈/김국진 국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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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공직자 부정부패는 요즘 세계적인 공통 화젯거리다.
한국에서는 「신한국 창조를 위한 개혁」과정속에서 부정축재한 정치인,자식의 대학입학을 돈으로 산 부유층,돈을 주고 별을 단 장군들이 줄줄이 철창행하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가네마루 신(금환신)이란 거물급 정치인이 거액의 탈세혐의로 붙잡혀갔으며 이를 계기로 「정치와 돈」의 검은 관계를 청산하자는 정치개혁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다. 홍콩과 대만에서도 부정부패추방운동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이 운동의 대표주자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실태 못지않게 따가운 여론을 대하는 부패 당사자들의 행동 또한 관심을 끌고있다.
지난 1일 프랑스 중부 느베르시 외곽의 한 운하산책로를 거닐던 피에르 베레고부아 전총리가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자살했다.
3월 총선에서 소속 사회당이 참패해 총리직에서 물러난데 따른 충격과 지난 86년 한 친구 기업인으로부터 무이자 대부를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아 자신의 정직성까지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심적 부담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부금은 1백만프랑. 우리돈으로 약 1억4천5백만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부패의 사슬을 끊기위한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운동 과정에서 지난 1년간 대기업 임원들과 정치인들간의 「검은 결탁」이 파헤쳐져 약 1천명이 체포됐으며 이중 혐의자 7명이 양심의 가책으로 자살했다.
일본에는 고위공직자가 부정부패 혐의를 받고있을 때 내막을 잘 아는 비서 등 측근이 죽음으로 대신 책임지려는 특별한 전통이 있다.
76년 8월 록히드사건때 사건내막을 속속 알고있던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총리의 운전사 가사하라 마사노리(입원정즉)가 자살했는가 하면,89년 4월에는 리크루트 사건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던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총리의 비서 아오키 이헤이(청목이평)가 목매 자살했다.
한국에서 수억원,수십억원대의 돈이 「무이자 대출」도 아니고 거저 건네지고 있는데 비하면 베레고부아 전총리를 자살로 몰고간 정도의 부정은 우리 기준으론 「선처」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우리 주변에는 통 큰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죽음으로 부정부패의 책임을 지려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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