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대희코너] 여러 여자를 탐하는 본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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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가 일부일처제라는 틀로 이어져온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다. 스스로 상국(上國)임을 자처하며 섬기기를 강요하던 중국도 17세기까지는 일부다처가 사회적 지위와 부의 상징이었고 만인이 오매불망 그리던 이상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자식을 동일한 여자의 자궁을 통하지 않아도 좋으니 다산하라는 것이 그 당시의 윤리도덕이었다. 따라서 외도의 쾌락은 다양한 자세 변화와 세련된 테크닉이 수반된 섹스에서 온다고 믿고, 남자의 바람기는 중국인의 생활관습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들에게 정숙을 강요하면서도 성교를 묘사한 그림이나 남성적 능력을 증진하는 환약이나 도포제 등, 관능을 자극하고 흥분성을 높여주는 다양한 보조제들이 시장에서 자유 판매되는 모순을 보였다.

남성으로서 마스터해야 할 필수과목은, 사정에 이르는 것을 연기해 가며 24가지 체위의 변화를 익히는 것이 표준으로 되어 있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소재로 출간된 소설이 곧 『금병매(金甁梅)』인데 이것은 어떤 방탕한 상인의 성애생활을 묘사한 풍속소설로 남성들에게 필독의 교과서였다.

일찍부터 중국의 방중술에 관한 저서에는, 남자가 여러 명의 젊은 여자를 바꿔가며 섹스하면 젊어진다는 가르침이 실려 있었다. 한 사람의 여자와 1대 1로 교접할 것이 아니라 3~9명, 또는 10인 이상과 관계를 맺게 되면, 섹스를 지탱하는 힘은 평소의 배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같은 값이면 중년보다 젊은 여자, 꼬집어서 지적하면 14세에서 18세가 가장 좋은 상대라고 권장한다.

수·당 시대에 저술된 이 방중술이 가진 공통점은, 남자가 한 여자하고만 섹스를 고집할 경우 정기가 약해져 곧 성기능을 상실해 버리게 된다는 경고문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원래 중국의 저술과 학문에 심취했던 것이 우리들인 데다 상기한 방중술은 황제내경에 암시된 섹스 기능에 관한 언급과 더불어 한국 남성들의 가슴속 깊이 면면히 이어져 흐르고 있던 유일한 성 지식이었으므로 그것의 지배력은 상상도 못할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그럼 여기서 남자는 왜 한 사람의 여자로 참지 못하는가, 의학적 측면에서 그 이유에 접근해 보려고 한다.

인류학 초기에 그러했듯이 인간도 동물의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암수가 제각기 먹이를 찾아 숲 속을 헤매고 본능의 부름에 따라 생식행위가 성립되면 그것으로 그만, 암수는 공동생활의 이점을 인식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먹이를 차지할 때의 경쟁만큼 생식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도 수컷들 사이에 피나는 다툼이 따랐고 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곧 생존경쟁의 승리자로서 자리를 굳히는 첫 요건이었다. 그래서 성격이 온순하기로 유명한 초식동물조차 각축전(角逐戰)이라는 형식을 통해 암놈을 차지할 권리 순서를 정하게 되었다.

이 자연현상을 뒤집어서 말하면 많은 암컷을 거느린다는 것이 곧 무리의 최강자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능력인 셈이 되고, 그런 소망은 애니멀이건 호모 사피엔스건 공통된 신념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하찮게 보이는 이 생식방법이 동물의 진화를 이끌어 온 원동력인 것을 안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다.

즉 찰스 다윈이 적자생존이라는 이론을 발표해 유전의 이치를 설명하면서 이런 피나는 다툼을 통해 강자의 유전자가 암놈의 생식세포에 수정된다는 것이 그 생명체의 우생학적 발전을 가져온다는 이론을 설명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인간도 수컷이 가진 ‘한 암놈에 국한하지 않고 요구를 높여가는 수놈의 본능’이 가져다 준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로부터 많은 생물학적 시공의 벽을 넘어온 것이 인간이긴 하지만 아직도 그 머릿속에 하늘이 준 생식달성의 사명을 필사적으로 달성하겠다는 어떤 부동의 유전자가 우리들 남자를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곽대희 피부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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