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독일의 「어린이 보호」(특파원 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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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승용차 안전의자」 정부서 의무화/일방적 조처에 반발·잡음없이 수용
지난달 1일부터 독일의 교통법규가 바뀌었다. 으레 그러하듯 처벌규정이 대폭 강화된 것이다.
예컨대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면 4백마르크(약 20만원)까지의 벌금에 1개월간 운전면허가 정지되고 음주운전으로 두번 적발되면 1천마르크의 벌금에 3개월 면허정지가 병행된다는 것 등이다.
대부분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가 가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해는 가지만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생소한 규정이 있다.
「만 12세 이하,또는 키 1m50㎝ 이하인 어린이를 승용차에 태울때는 반드시 뒷좌석에 어린이용 특수 안전의자를 부착,그위에 앉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이를 위반하면 40마르크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 어린이용 의자는 유럽경제위원회의 규격에 따라 제조되고 성능이 시험된 것이라야 한다.
그간 독일에서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유아나 취학전의 어린이들은 별도의 안전의자에 앉혀 승용차에 태워 왔다.
그러나 이같은 새로운 규정으로 그동안 그냥 뒷좌석에 타기만 하면 됐던 대부분의 국민학교 어린이들이 이 어린이용 의자를 이용해야 한다.
물론 어린이의 안전을 위한 조치이긴 하지만 이는 보통 불편한게 아니다. 우선 부모들은 『내가 왜 젖먹이냐』고 반발하는 어린이를 설득해야한다. 게다가 이 의자를 구입하기 위해 2백마르크(약 10만원) 정도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또한 어린이가 3명만 되면 더이상 승차할 공간이 없어져 가족나들이도 어렵다.
이처럼 시민들의 반발 소지가 있는 이 규정을 독일 연방교통부는 공청회 등 여론수렴과정을 거치지 않고 거의 일방적으로 결정,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아무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내자식 안전 내가 걱정하는데 무슨 소리냐. 행정만능주의적 발상이 아니냐』는 등의 주장이 나올 법도 한데 아무도 군말없이 이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서도 이 규정을 적극 홍보할뿐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규정을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십중팔구 반대여론이 물끓듯 하고 어린이용 의자 제조업체의 로비 얘기부터 나올 것이다.
5월5일 어린이날에 즈음해 자동차가 대중화된 우리도 이 문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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