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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없는 사회를 사는가(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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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부 요인중의 한사람이고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이 쫓겨나다시피 의장직을 사퇴하는 자리에도 본인은 참석지 않았다. 뭔가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했고 잘잘못을 따져보는 대화와 토론의 자리가 마련됐어야 하는데 그런 기회조차 없이 당사자는 외유길에 오르고 있었다.
박 의장은 남이 대독하는 석명서를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힐게 아니라 그 자신이 떳떳이 국회에 참석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주었어야 했다. 그것이 박 의장 개인이 사는 길이고 공인으로서 그가 걸어야 했던 떳떳한 길이었다. 그 다음 그 발언을 기본으로해서 국회의원들이 의장의 사퇴여부를 판단했어야 옳았다. 이런 모든 절차와 과정이 생략된채 국회의장은 바뀌었다.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민자당의 의견개진요청에 따라 재산공개법이 부분적으로 위헌일수 있다는 조심스런 주장을 발표했다. 「독립생계를 유지하는 존비속은 제3자나 다름없으므로 재산공개를 강제하는 것은 헌법의 개인책임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나 「일률적 재산공개를 강요하는 것은 헌법제17조에 저촉될 수도 있다」는 제안 등은 감성적 바람몰이에 휘말려 자칫 이성적 자세를 놓치기 쉬운 요즘세태에 한 걸음을 멈추며 반대론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도 위헌론이 등장하자마자 여야 가릴것 없이 그 제안자를 마치 무슨 구시대의 유물취급하듯 매도하는데 서슴지 않았다. 월계수 회원이라느니,지난 실세의 하수인이라느니 등 인신공격으로 매도함으로써 토론으로 따져보아야할 대목을 감정과 인신공격으로 넘어가 버렸다.
위헌론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대세와는 다른 주장이 나왔을때 그것을 경청해 주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수의 의견을 수용하고 여러 생각들을 드러내 토론하며 일을 처리하는 사회관행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리가 과거 건전한 토론문화를 갖지못하고 시대상황에 밀려 부화뇌동식으로 일을 처리한 결과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민시대의 요체는 시대분위기라는 이름으로 넘어가는 초법적이고 비민주적인 절차가 다시는 자리잡아서는 안된다는데 있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대화와 토론이 중시되고 이 과정에서 결론이 도출되는 토론문화의 시대가 문민시대인 것이다.
감성보다는 이성이 존중되고,목적보다는 절차가 중시되며,결과보다는 과정과 방법이 중시되고 존중되는 사회가 참다운 의미의 문민시대의 민주화라고 하겠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세태는 이성 보다는 감성이 앞서고 있고 대화와 토론을 통한 절차와 과정은 소홀히 한채 개혁과 부정척결의 한 목소리만이 이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냉정히 되돌아봐야 할 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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