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과 최고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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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왕위 류창혁5단과 도전자 조훈현9단이 정상을 다투는 「제27기 왕위전」결승7번 승부가 시작돼 제1국에서 도전자 조9단이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는 것은 이미 보도된대로다.
조9단은 도전자 선발리그에서 난적 서봉수9단과 제자 이창호 6단을 제치고 도전권을 획득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게 주위의 얘기. 어쨌든 그 여세를 몰아 쾌조의 진군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제1국은 집백의 류왕위가 그 특유의 화려함으로 포석에서 성공해 단연 우세한 바둑이었으나 지나치게 형세를 낙관한 나머지 중반말미에서 10여집을 손해봐 반집차로 아깝게 역전당한 내용이다.
7번 승부는 흔히 마라톤에 비유되곤 한다. 이제 첫판이 두어졌을 뿐이므로 시작에 불과하다 할까. 「바둑은 류왕위가 이기고, 승부는 조도전자가 이긴」제1국의 내용이 말해주듯, 판을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한 명승부가 펼쳐질 것이 예상된다. 또한 두 천재기사는 「제6기 후지쓰배세계선수권전」에서 나란히8강에 진출한 터여서 이번 왕위전 결승7번 승부는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
류왕위는 금년 들어 18연승을 거둬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나 왕위전의 1패로 연승가도에 브레이크가 걸린것. 혹자는 『18연승 가운데 조훈현·서봉수·이창호가 들어있지 않다』고 꼬집었지만 「미스터 컴퓨터」이시다 요시오(석전방부) 9단과 「제2의 린하이펑(임해봉)」왕리청(왕립계)9단을 꺾는 등 그 18연승은 발군의 전적임에 틀림없다.
특히 과거에는「기복이 너무 심한 것」이 류창혁의 최대약점으로 지적되어 왔으나(그가 조훈현·서봉수·이창호에 비해 예선 토너먼트에서 탈락하는 률이 현저히 높았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금년 들어서는 놀라우리만큼 안정된 페이스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그의 바둑에 선 「무리수」나 「덜컥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게 기가(기가)의 분석이다.
이창호6단이 기성타이틀을 빼앗아 스승 조훈현9단을 3관왕(국수·기왕·패왕)으로 끌어내리더니 금세 최고위 타이틀을 되돌려줘(?) 큰 것을 빼앗고, 작은 것을 내주는 이른바 사소취대(사소취대)로 더욱 실속을 차렸다.
그런데 최고위 타이틀은 조·이 두사제와 인연이 깊다. 조9단의 첫 우승이 최고위전이었고, 이6단도 TV속기전이 아닌 「본격타이틀」쟁취는 다름아닌 최고위였다. 그런 최고위타이틀을 이들 사제끼리 만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으니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고, 후학의 추격은 무섭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새삼 깨닫지 않을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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