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러시아선원/중고가전품 구입 줄이어(지방 패트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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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베링해 명태잡이 끝내고 몰려/러시아인 전문 가게만 10여곳
/때아닌 중고품 특수 “즐거운 비명”
가정에서 버리는 중고냉장고나 세탁기등이 부산항을 찾는 러시아 선원들의 주요 쇼핑품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용량이 큰 것 또는 최신모델로 바꾸는 가정에서는 돈을 주고 버려야 할 정도로 처치곤란이지만 칠을 다시 깨끗이 하고 조금만 손질을 하면 새것처럼 쓸 수 있어 이들 선원들이 앞다투어 사가고 있다.
덕분에 부산에서는 때아닌 중고 가전제품 특수가 일어나고 있다.
20일 오후5시쯤 부산시 중구 중앙동 부산본부세관 통선장 앞마당에선 러시아 선원들이 구입한 가전제품을 가득 실은 1t트럭 4대가 한꺼번에 도착하자 차량마다 선원 10여명씩이 매달려 자기 물건을 찾기위해 이리저리 뛰는 모습들이 보였다.
같은 시각 부산외항에 정박중인 선박까지 운항하는 통선(바다택시)이 접안하는 세관 통선장 부선위에서도 중고냉장고 5대와 중고 컬러TV와 VTR 10여대가 통선에 실리고 있었다.
이같은 광경은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베링해의 명태잡이철이 끝나면서 러시아 어선들이 휴식과 선물용품 구입을 위해 부산항으로 몰리기 시작한 이달 중순부터 사흘에 한번 꼴로 벌어지고 있다는게 통선장 관계자들의 얘기.
20일 부산에 상륙한 러시아 선원 4백여명이 구입해간 가전제품은 대략 냉장고20대,세탁기5대,컬러TV10대,VTR10여대,카셋5대등 5백여만원어치.
이들 가전제품중 냉장고와 세탁기·TV는 중고품 일색이며 VTR와 카셋도 일부만 포장이 말끔한 신품일뿐 나머지는 모두 중고품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있다. 그중에서도 중고냉장고는 단연 인기최고.
러시아인들의 쇼핑장소로 애용되는 곳은 주로 부산시 동구 초량동 속칭 텍사스 골목의 러시아 전문가게와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시장 중고전자냉동상가.
91년초부터 러시아인을 상대로한 전문가게 10여곳이 생겨나 성업중인 텍사스 골목의 경우 3월말 문을 연 중고품 전문 판매점인 이방코를 비롯,부산 최초의 러시아인 전용가게인 빅토리등 서너곳에서 수십대씩을 진열해놓고 팔고 있다.
또 지난해 봄부터 텍사스골목에 정기적으로 중고품을 공급해주는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 부전시장내 30여곳의 중고전자냉동 상가에서 직접 물건을 사가는 러시아인들도 늘고 있으며 구입한 냉장고와 세탁기는 비닐로 포장,배이름과 통선장 도착시간을 적은 물표를 부착해 배달료 1만원만 주면 업소에서 트럭으로 운반해 준다.
가전제품 대리점에서 신품을 판매하고 쓰던 제품을 헐값이나 돈을 주지않고 수집한 것을 중고 냉동상가에서 구입,깨끗이 씻고 칠을 다시 하는등 수선을 거쳐 나오는 중고 가전제품중 냉장고의 경우 생산된지 5년 안팎의 중고가 대부분이며 용량2백∼2백50ℓ 크기의 5만∼10만원짜리가 잘 팔린다.
냉장고는 주로 가정에서 한꺼번에 대량 구입한 식품을 장기간 보관하는데 활용된다는것. 따라서 냉동실이 큰 제품일수록 인기가 높다.
7만원 안팎인 세탁기는 선박용과 가정용으로,텔리비전은 한국과 러시아의 주파수가 맞지 않아 주로 게임기나 VTR에 부착해 활용하기 위해 구입해 간다는게 판매소 업주들의 설명.
부산본부세관과 관련업계는 러시아선원들이 이렇게 구입해 가는 중고품 등 가전제품은 월1억원어치가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러시아인들의 우리나라 가전제품 구입러시는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전제품이 러시아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일본제품과 품질이 비슷한 수준이면서도 가격이 싼데다 80년대에 생산된 일본제품은 대부분 1백10V전용이고 한국제품은 1백10·2백20V겸용이어서 2백V전용 가전제품만 사용할 수 있는 러시아에서 한국제품 사용이 용이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텍사스 골목에서 3년째 러시아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있는 빅토리 업주 이병관씨(44)는 『70년대 우리나라사람들이 일본에서 가전제품을 많이 사왔듯이 요즘 러시아 선원들이 부산에서 우리나라 가전제품을 사가고 있다』면서 『괄시받는 중고제품이 특히 잘 팔려 외화획득과 자원재활용의 이중 이익이 있는것 같다』고 말했다.<부산=강진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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