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후보 발도 못붙인 부산/이상언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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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하·동래갑 등 부산지역 2개선거구보궐선거가 민자당후보들의 압승으로 끝났다.
부산 2개지역의 보선결과는 『부산이 낳은 김영삼대통령의 자랑스런 개혁정치를 「확실히」 지지하기 위한 것』(한 시민)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
선거기간중 만난 부산시민들은 김 대통령의 개혁시책에 대해 한결같이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기자가 짐짓 김 대통령의 개혁시책에 이의를 제기할라치면 덤벼들듯 반박하기 일쑤였다. 때문에 선거결과는 시민정서의 자연스런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23일 밤 개표초반부터 민자당후보의 독주를 담담하게 지켜보던 한 민주당참관인도 이점을 시인했다.
『민주당후보를 당선시키면 민주당이 힘을 얻어 김 대통령 정부를 견제할 것이라는 유권자들의 고정관념앞에서는 어느 야당후보라도 무릎을 꿇을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또다른 민주당참관인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막바지에 중앙당이 문제삼은 김영삼대통령의 총재서신발송시비도 부산지역에서는 오히려 표를 달아나게 했을 뿐입니다. 최형우 전민자당사무총장의 사퇴로 김영삼대통령을 국회에서 보좌할 또 다른 측근이 필요할것이라는 정서가 유권자들에게 박혀있는 마당에 김 대통령을 공격하는 정당후보에게 표를 주겠습니까.』
이런점을 감안하더라도 사하선거결과는 여전히 우리의 선거풍토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했다.
민주당후보는 민자당후보에 일방적으로 밀릴 수만은 없는 높은 지명도와 정치경력을 갖고 있다.
민주당후보도 한때 김 대통령을 보필했다. 3당합당때 야당에 남는 정치적 결단을 해서 김 대통령과 갈라선 것이 결정적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런점에 비추어보면 선거결과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다.
부산시민이 개인의 평판이나 자질보다는 정당쪽을 더 우선했다고도 볼수 있는 선거결과다.
정당정치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아줄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찬찬히 생각하면 이번 선거결과에 지역성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고 단정할수도 없다. 지금 국민들간에는 TK가 가고 PK가 등장했다는 소리도 있다.
때문에 이번 보궐선거를 보면서 과거 『호남에는 김대중씨가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을 연상했다.
부산의 YS장풍이 호남의 DJ독식과 뭐가 다른가.
「난을 그릴때 줄기 하나는 꺾어지게 그리는 것이 삶의 여유」라는 말처럼 부산시민들은 과연 여당의원 숲속에서 최소한 야당의원 한명은 키워내는 여유를 내보일수 없었을까.<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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