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아테네] 4. 여자 하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한 걸음, 한 걸음만 더!"

불암산 칼바람이 태릉선수촌 인조잔디 코트에 회오리를 만든다. 한국 여자하키 대표팀 김상열(49)감독은 좋아하는 선글라스를 그냥 모자 챙 위에 얹어둔 채 싸늘한 시선을 분주하게 던지며 소리친다.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올림픽의 해, 빨리 잊혀지기도 하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종목 하키. 2003년 12월 현재 남자는 세계랭킹 4위, 여자는 6위. 남자팀은 4년 전 시드니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 '아시아에서 온 기적'이라는 외신의 칭찬을 들었다. 지난해 홍콩 4개국 대회에서는 영국을 5대1로 꺾고 우승했다. 반면 여자는 호주에서 열린 챔피언스 트로피대회에서 꼴찌를 했다.

전력상 남자팀이 메달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게 하키다.

"세계 랭킹 1~3위권과 4~6위권의 실력차는 '한골 차'다. 세계랭킹 4위 중국과 우리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우리는 젊은 선수가 많아 지속적으로 전력이 향상되고 있지만 다른 팀들은 발전할 여지가 없는 노장들이 주축이다."(양성진 하키협회 사무국장)

여자하키 대표팀은 지금 최강의 전력이다. 김성은(28).유희주(28.이상 KT) 등 베테랑과 김윤미(24).이선옥(23) 등 신예가 조화를 이룬다. 오고운(24).김진경(23) 등도 있다. 눈을 감고도 서로 위치를 파악할 만큼 단단한 팀워크다. 특히 주장이자 게임메이커인 김성은의 스피드와 투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다. 2002년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중국 선수가 때린 공을 머리로 막은 악바리다.

그런 주장을 뒀으니 동료들 모두 어느덧 불암산 중턱의 1백50m 코스 고갯길을 스무번씩 달려 올라가는 혹독한 훈련을 매일 견뎌내는 독종들이 됐다.

여자하키에 기대를 거는 많은 이유 가운데는 김상열 감독의 존재도 있다. 시드니올림픽 당시 남자팀을 조련한 승부사다. 메달이 '한골'에 걸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한골 차가 얼마나 큰 줄 아십니까? 어떤 경기에서는 열골 차가 됩니다."

김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는 거미줄처럼 코트 곳곳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하키'다. 아메바가 몸을 펼치듯 일순간에 공수를 전환하면서 코트 전면을 지배하는 플레이다. 아테네에서 또 한번의 기적을 꿈꾸며 김감독은 네트워크에 스피드를 접목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감독님은 스피드를 가장 좋은 개인기로 여겨요. 스피드를 강조하는 입버릇 '한 걸음 더'는 이제 작전이 됐지요. 수비를 제치기보다 상대 선수보다 '한 걸음 더' 달려 '한 걸음 더' 먼저 상대 코트로 침투할 것을 요구합니다."(김성은)

그 한 걸음에 메달의 꿈이 실려 있음을 선수들 모두 잘 알고 있다.

허진석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