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부족… 맘만 먹으면 범행가능(국립교육평가원: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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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상:생선가게 맡은 고양이격/37명이 “관리” 업무진행 손금보듯/허술한 보안 「연금」중에 외출까지
답안지를 빼돌릴 기회만 엿보고 있는 김광옥장학사(50)에게 국립교육평가원측은 출제관리의 「마스터 키」 역할인 기획위원직을 맡아달라고 「통사정」했다. 배고픈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통째로 맡긴 격이었다.
김 장학사에게 3년을 내리 출제관리를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 인력부족 때문이라는게 평가원측의 하소연이다.
평가원의 총인력은 원장에서 비서직까지 모두 1백36명. 이중 출제관리에 직접적으로 동원되는 장학사·장학관·연구사 등 전문직은 66명이다. 그나마 실·과장급 및 사무실 잔류요원을 제외하면 출제관리에 실제 투입될 수 있는 인원은 37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번 후기대입시 출제관리에서 평가원은 여느 대학입시때와 마찬가지로 출제본부에 14명·인쇄본부에 18명을 배치,가용인원의 대부분인 32명을 투입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 장학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원들이 해마다 대입출제 관리에 동원되고 있다. 평가원에 9년째 근무중인 이호상 교육연구관은 『대입출제관리만 8년을 계속해왔다』고 했다.
김 장학사가 자신의 상급자인 김종억장학관에게 『아들 입시를 내게 맡겨달라』며 선심쓰듯 정답지를 건네줄 수 있었던 것도 각종 입시때마다 함께 동원돼 연간 최고 5∼6개월의 합숙생활속 고락을 같이한데서 「검은 정」이 싹틀 수 있었다는 점을 짚을 수 있다.
이들 출제관리요원에 대한 위촉과 직무가 부여되고 외부와 차단되는 출제본부 입소 사이에는 통상 2∼3일간의 시차가 있었다는 점도 부정을 가능케 한 요인중의 하나였다.
이미 여러해에 걸쳐 출제관리 경험이 있는 이들은 자신이 맡을 일을 통보받는 순간 출제업무의 진행과정을 손금보듯 했고 「생선을 맡은 고양이」의 범의를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실행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진급도 불리하고 포상·보상 등 혜택도 없이 사생활을 희생하는 평가원근무에 지친 이들 직원들에게 행여 유혹의 손길이 뻗칠 경우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원관계자는 실토하고 있다. 정답유출과 같은 부정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한성과학고에 세들어 있는 평가원의 출제관리가 독립시설없이 호텔방을 전전하며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허점은 「설마」하는 방심이었다고 평가원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국가고사를 출제한다는 자긍심과 출제에는 교수·교사가,관리에는 교감·교장급 등 모두 도덕성을 갖춘 「스승님」들이니만큼 이번과 같은 사건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호감시나 소지품검사 등 고시관리의 요체인 보안은 허술했고 문제출제가 끝나 입시까지 10여일 정도 남은 「무료한」 기간은 어느정도 자유로움이 보장돼 특별한 경우는 외출까지도 가능했다는 것이다.<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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