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극장업 진출 눈앞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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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대기업들의 극장업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영화업계의 재편성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삼성·럭키금성·현대·선경 등 대기업들은 계열 비디오사들을 앞세워 시내중심가의 개봉관을 장기임대 하는 등의 형식으로 극장업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은 현재 복합극장으로 확장하기 위해 휴관중인 명보극장과 임대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접촉을 계속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년에 4개의 상영관을 갖춘 복합극장이 완공되면 1관은 명보가 사용하고 나머지는 삼성이 임대운영한다는 것이 접촉의 내용.
대기업중 상대적으로 늦게 영상산업에 진출한 현대는 계열사인 서울프러덕션을 통해 서울도심 극장등을 임대하거나 변두리에 극장을 신축하는 등의 형식으로 연내에 모두 10여개의 극장을 산하에 둔다는 복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럭키금성도 시내중심관에 프로 공급을 위한 임대계약을 추진중이라는 소문.
선경은 이미 서대문의 르네상스극장 건립에 대부분의 지분을 갖고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두산은 최근 옛 기독교방송 인근 부지에 완공한 연강빌딩중 일부를 상업영화 상영관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이 건물 지하 5백석 규모의 연강홀은 복합공연장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개관기념공연이 끝나는7월초부터 영화상영에 나설 채비를 갖춰놓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앞다퉈 극장업에 진출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비디오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고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할리우드의 메이저영화사들이 지난해말을 기점으로 모두 직배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이른바 인디펜던트 영화나 한국영화외에는 판권을 따올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기 때문에 비디오사들은 큰 고전을 겪고있다.
게다가 한국의 비디오 시장에서는 극장개봉작이냐 아니냐가 비디오판매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개봉관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 통상 국내비디오시장에서는 극장에 개봉됐던 작품이 그렇지 않은 작품보다 두배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한국영화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설때에 대비해 미리 배급망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미 지난해 한국영화 제작에 나선 경험이 있는 이들은 배급망이 없어 극장에 걸지도 못하는 수난을 겪은바 있어 안정적인 배급망의 구축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제작을 장기적으로 추진하려면 극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영상산업의 중요성이 날로 커가는 현시점에서 대기업들이 영상 소프트웨어의 높은 경제적 가치를 인식하고 이에 투자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다. 소니·마쓰시타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할리우드의 영화사를 매입하거나 지분에 참여하는 것에서도 이는 잘 나타나고 있다. 주로 하드웨어 생산업체인 이들에게 하드의 안정적인 판매를 위해서는 소프트 공급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으로 정착했다.
영화인들 가운데는 『한국의 영상시장에서도 대기업의 진출은 기정사실화된 상태』라면서『대기업의 진출은 충무로의 영화제작 관행을 근대화시킨다는 의미에서 환영할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대자본을 갖고 있는 대기업들이 한국영화 제작에 대한 장기적 플랜은 세우지 않은채 수익성이 높은 극장업에 먼저 진출하는 것은 너무 얄팍한 상혼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 임재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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