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생쥐와 개구리'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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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생쥐와 개구리가 이웃해 살고 있었다. 개구리는 쥐가 항상 자기보다 멀리 다니며 먹이를 많이 차지하는 게 불만이어서 언젠가는 혼내주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어느 날 개구리는 쥐에게 친구가 돼 함께 다니자며 둘의 발목을 조금 긴 노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한동안 둘은 들판을 사이좋게 다니기도 했지만 마침내 연못에 다다랐을 때 개구리가 물에 뛰어들었다. 생쥐는 헤엄을 못 친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골탕을 먹이기로 작정한 개구리는 잠수를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익사한 생쥐가 물에 뜨게 되자 멀리서 먹이를 노리던 독수리가 그것을 낚아챘다. 개구리는 물속으로 숨으려 했지만 묶인 발목 때문에 생쥐에게 매달려 공중으로 올려졌고 마침내 함께 독수리의 밥이 되고 말았다.

이 이솝우화는 우리가 당면한 현안들과 관련해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잔꾀로 상대를 곤궁에 빠뜨리려 하다가는 바로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복수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1년간 정계에서는 상대를 침몰시키기 위한 개구리식 수법이 횡행했고 그에 따른 피해가 속출했다. 대통령 재신임 문제, 대선자금 문제, 대통령 측근의 비리 문제 등에서 서로가 노림수를 들이대 왔는데 결국은 정치권 전체가 진흙탕에 내동댕이쳐지는 결과를 맞이했다. 국민 앞에 얼굴을 들 수 없게 된 인사들이 새해에는 반성의 빛을 보이면 좋으련만 그런 징후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걱정이다. 정부와 여권 쪽은 이번 총선에 생사를 걸겠다는 기세로 대통령 재신임과 총선의 연계 방안, 장.차관 출마 동원 등 갖가지 전략을 짜내고 있다. 야당 쪽도 대통령 지지자들의 색깔론을 거론해 가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둘째 교훈은 경제와 관련된 것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반목과 싸움질만 되풀이하다간 함께 파탄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정치가 구정물 속에서 잠수하는 동안 경제는 생쥐꼴이 되고 말았다. 정치 쪽의 분란과 불확실성이 워낙 커지다 보니 경제가 빈사상태에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이 교훈은 특히 노사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화나 양보보다 힘과 투쟁으로 상대를 압도하려다 노사 쌍방은 물론 경제 전체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했다. 전투적인 노동운동과 불법파업은 국내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해외이전을 촉진해, 경기가 침체되고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이런 환경하에서 외국인들의 직접 투자 또한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한 해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1천1백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는 65억달러의 초라한 수준에 머물렀다.

셋째 교훈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되는 것인데 생쥐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친구가 되잔다고 깊은 생각도 없이 발목이 묶였다가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칠레와의 FTA는 그동안 충분한 검토와 대응방안이 강구된 것이어서 별 문제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 또는 중국과의 FTA는 사정이 다르다. 언제 어느 쪽이 개구리가 될지, 독수리가 될지 모를 일이다. 발목을 묶더라도 노끈의 길이를 길게 해서 닥쳐올 재난에 대비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정말 많이도 싸워 왔다. 해방 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 피를 흘리며 싸웠고 그 뒤에는 동과 서로 분열돼 다투어 왔다. 지금도 지역 간, 계층 간, 이념 간, 정파 간의 반목과 투쟁은 계속된다. 새해에는 잠시라도 싸움을 멈추고 우리의 진정한 적과 경쟁자가 누구인지, 어부지리를 노리는 독수리는 없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노성태 경제연구소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