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계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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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얼굴을 감추거나 바꾸어 예금되는 뭉칫돈은 몇푼이라도 돈을 더 불리겠다는 생각보다는 남이 눈치채지 못하게 안전하게 잠시 보관해놓겠다는 생각이 훨씬 강한 돈들이다. 따라서 아무래도 출처가 불분명한 성격의 돈일 가능성이 높다.
차명거래는 말 그대로 다튼 사람의 이름으로 들어 거래한 예금이다.. 하지만 이 예금에 대한 실질적인 소유자는 그래도 실제로 예금을 한 사람이 된다. 예금자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처음 통장을 개설할 때 찍어놓은 도장을 누가 갖고 있는지, 또 그 도장을 누가 들고와 원장의 도장과 같은지를 대조하고 돈을 찾아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차명거래의 형태는 다른 사람의 동의를 받는 경우와 아예 동의도 없이 임의로 하는 경우( 도명)가 있다. 동의를 받는 경우는 대부분 가족이나 친·인척으로부터 양해를 구해 그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한다. 다른 사람의 동의를 받지 않는 경우에도 가족이나 친·인척이 많고, 사업주가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 종업원의 이름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
또 아예 달동네에 가서 주민등록명부를 열람, 「단체」로 이름을 훔쳐 쓰는 일도 있다.
예금거래에서 차명을 하는 경우중 상당수가 일정한도까지만 세금혜택이 주어지는 예금에 그 한도내에서 분산해 예금하는 경우다. 세금우대 저축에 한도를 넘어 예금하면 일반 예금과 같이 21·5%에 이르는 이자소득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세금을 덜 내기(절세)위해 가까운 이의 이름들을 빌려 거액을 쪼개 예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년퇴직자가 즐겨 찾는 노후생활연금신탁의 경우 한사람당 1천5백만원까지만 이자소득에 대해 5%의 낮은 세금이 부과돼 l6·5%포인트의 절세가 가능하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세금우대혜택을 보기 위해 부인·자녀는 물론 친척 이름까지 빌려 예금한다. 퇴직금이 1억원일 경우 1천5백만원씩 나눠서 예금하려면 본인외에 적어도 여섯사람의 명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차명이라고 해서 아무 이름이나 빌릴 수는 없게 돼 있다. 통상 은행창구에서 예금을 개설할 경우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다르면 은행의 전산시스팀에서 거부반응이 나와 통장을 만들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반드시 자기 이름으로 예금을 하도록 돼 있지는 않지만, 남의 이름으로 하더라도 엉터리로 주민등록번호까지 임의로 만들어 가공의 인물로 차명예금을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정상적인 예금이 아닌 이같은 차명예금은 이따금 말썽을 일으키며 실제로 소송으로까지 번진 경우가 있었다.
기업대표가 종업원 명의로 예금을 들었는데, 그 기업에서 종업원의 급여를 자동이체하는 경우 은행은 그 종업원의 예금거래실적으로 종합통장형태의 실적부대출을 해주는 경우가 있어 종업원이 대출금과 이자를 제대로 못내면 문제가 생긴다.
이름을 빌린 사람이 세금을 제대로 안내 국세청에서 이 사람의 금융거래를 파악하면 이 예금이 고스란히 세무서에 압류당할 수도 있다. 또 이름을 발려준 사람에게 맏을 빚이 있는 채권자가 이 예금사실을 알고 법원의 압류명령을 받아가져 갈 수도 있다. 이 경우 실제로 예금을 한 사람은 소송을 걸어서 찾아올 수는 있지만 결국 시간과 소송비용부담이 생긴다.
게다가 차명한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 그 아들이나 딸이 은행에 가서 죽은 이의 예금거래를 확인했다가 이를 알게 되면 그 예금의 권리를 찾으려들 것이기 때문에 소송이 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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