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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최종 목적은 철군·동료석방 요구하더니 결국은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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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결국은 돈?=납치범들은 애초 아프가니스탄 주둔 한국군 철수와 수감 중인 탈레반 동료 석방이라는 정치적인 요구를 내놨다. 한국과 아프간 정부가 인질극의 배후에 정권 재탈환을 노리는 탈레반 지도부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납치범들의 요구와 대변인을 자처하는 인물의 말이 계속 바뀌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납치범들은 한국인 납치 사실을 처음으로 발표하면서 아프간 주둔 한국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과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이 시작된 뒤엔 인질과 같은 수의 탈레반 동료를 석방하라고 요구 조건을 바꿨다. 그 뒤 다시 가즈니주에 수감된 탈레반 대원 전원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다 아프간 정부가 단호한 거부 입장을 보이자 한국 정부와의 직접 협상을 들고 나왔다. 이에 따라 납치범들이 몸값을 요구하기 위해 직접 협상을 요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와중에 10만 달러 요구설이 나온 것이다.

◆ 납치 단체 실체도 의혹=납치 단체의 실체에 대한 의혹도 가중되고 있다. 납치범들이 탈레반 반군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계속 나왔다. 독일 일간 '디 벨트'는 22일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 독일인을 납치한 무장세력이 탈레반이 아니라 현지 파슈툰족 무장강도라고 보도했다.

납치범들이 독일인과 한국인을 함께 붙잡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한국인 납치범도 탈레반이 아닐 수 있는 셈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아프간 정보 관계자의 말을 인용, 납치범이 친탈레반 성향의 다른 무장단체라고 보도했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한 카리 유수프 아마디의 말이 계속 바뀐 것도 혼란을 부채질했다. 그는 21일 2명의 독일 인질과 이들과 함께 잡힌 5명의 아프간인 모두 총살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23일엔 자신이 한 말을 대부분 번복했다. 독일 인질은 한 명만 피살됐고, 아프간인 5명 모두가 살아 있으며 그중 한 명은 도망했다고 전했다. 아마디는 23일 잦은 말 바꾸기로 신뢰성이 의심받자 "인질 구출 작전을 중단시키기 위해 허위 정보를 냈다"고 알자지라 방송에 말했다. 그는 "허위 정보를 발표해 아프간 정부를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통일조직 없는 탈레반=납치범들의 요구 조건이 계속 바뀌는 것은 탈레반에 통일된 지도부가 없기 때문이란 견해도 있다. 협상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가즈니주 경찰 책임자 알리 샤흐 아마드자이는 "탈레반에 통일된 입장이나 결정권자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토로했다. 탈레반은 현재 독자적인 반정부 무장세력이 느슨하게 묶인 연합체로, 단일 지휘 체계가 없다.

이와 함께 탈레반 지도부가 내부 갈등을 겪고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가즈니주의 한 고위 관리는 AP통신에 "한국인들을 납치한 탈레반 무장세력 간에 석방 조건을 놓고 이견과 갈등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상당한 액수의 몸값을 받아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수감된 탈레반 대원의 석방이 우선이란 입장을 내세우면서 서로 반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유철종.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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