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수확」미흡… 고민하는 검찰/높아진 국민기대 못미칠까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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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부정보 고갈… 거물급 수사 부진/감사원 활약에 입지확보 안간힘/“정치권인사 사법처리”묘안찾기 고심
달려가는 청와대와 감사원,고민하는 검찰­.
검찰의 요즘 심정과 형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사정을 직접 이끌고 주도해야할 검찰이 한편으론 감사원의 독주에 자존심 상하고 다른 한편으론 청와대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힘겨워 한다는 말이다. 국민들의 높아진 기대수준과 성큼성큼 앞질러가는 감사원을 뻔히 지켜보며 그럴듯한 가시적 사정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것도 물론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검찰을 더욱 당혹케하는 것은 최근 청와대발로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는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설이다.
청와대는 재산공개에서 물의를 빚은뒤 의원직 사퇴를 거부하고 민자당을 탈당한 의원들과 노태우 정권의 가신그룹에 대해 사법처리가 검토되고 있음을 직·간접으로 언론에 흘리고 있다.
박준규의원이 임시국회에서 신상발언을 한다는 말에 청와대가 몹시 불쾌해 했다는 소문은 사법처리 임박설을 더욱 뒷받침 해준다.
하지만 의원들의 사법처리가 정치권에서 생각하는대로 주문만 하면 곧바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게 검찰의 불만이다.
재산공개 과정에서 온국민의 지탄이 됐던 투기만 봐도 정작 법적으로는 처벌대상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고 위법이 있어도 십중팔구 공소시효가 지난다는 것이다.
민자당 김문기 전의원의 경우 검찰은 언론에 보도된 부분을 샅샅이 확인하고 자체 내사를 거친뒤 김 의원을 연행했지만 예상과 달리 화끈한 범법사실이 발견되지 않아 큰 애를 먹었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최근 정치권에서 정치권 인사명단까지 거명하며 사법처리 운운하는 부분에 대해 내심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실제 사법처리를 할 경우 은밀한 내사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정치적 고려와 필요」에 따라 말부터 앞세운뒤 범법사실 입증의 뒤책임은 검찰에 떠넘기는 태도가 못마땅 하다는 것이다. 일부 젊은 검사들은 『정치적 고려나 국민감정과는 별개로 법은 법대로 지켜져야 하며 최근 정치권이 검찰에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정치적 외압』이라고 반발하는 실정이다.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파견된 배재욱검사가 13일 친정격인 대검을 찾아와 김태정중수부장과 밀담을 나누고 돌아간 것은 이같은 검찰의 불만을 무마하고 정치인들의 사법처리와 관련한 「청와대의 입장」을 전달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낳고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젖혀놓더라도 검찰은 최근 거의 모든 외부정보가 고갈된 상태다. 청와대와 안기부·기무사·감사원 등에서 수시로 넘겨지는 고급정보들을 놓고 언제,어디까지 손대느냐에 대한 정치적 고려를 앞세워야 했던 과거와는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새정부 출범 이후 안기부·기무사가 사찰을 중단한데다 청와대·감사원도 무턱대고 검찰에 자료를 넘겨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검찰은 결국 자체 인지수사에 매달려야 하지만 사회 전체가 너나없이 몸을 움츠리고 있는 때여서 국민들이나 정치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난망한 형편이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바람이 된 개혁과 사정의 대의명분 앞에서 검찰이 부족한 정보와 여론재판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어떻게 극복해가며 높아진 국민들의 기대와 정치권의 요구를 충족시켜 나갈지 주목된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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