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세계화하는 해외 이주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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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냉전이 끝난 뒤 세계에서 약 1억8000만 명이 기회를 찾아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집단은 1970년대 말 개혁·개방 이래 중국을 떠난 1800만 명이다. 150여 개 나라로 떠난 이들은 ‘중국인 디아스포라’로 알려진, 해외 거주 3500만 화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인의 해외 이주를 부추긴 것은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국내 인구 이동이다. 인구 14억 명의 중국에서 약 2억 명이 농촌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두 자릿수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가 이들 모두를 수용할 일자리를 만들 순 없었다. 이 때문에 유례 없는 도시로의 인구 유입은 대혼잡, 사회적 무질서, 임금 하락 등을 야기했다. 그래서 그들 중 일부가 대안을 찾아 중국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 개방과 자유무역을 고취하는 분위기에 따라 자본과 상품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흘러가는 반면 사람의 이동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선진국 시민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이를 막아줄 수 있는 보증 장치로 국경이란 개념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고용주의 입장은 다르다. 그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저임금 이민자를 고용하길 원한다. 이민이 노동운동과 근로기준을 약화할 것이라는 기대도 한다.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이주 노동자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숙련공이 아닌 이상 이민자는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거나 임시 비자로 입국해야만 한다.

 일부 중국인은 때론 비극적인 결과로 끝나는 밀입국을 위해 범죄 조직에 수만 달러를 지급하기도 한다. 2000년 영국 당국은 도버항으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다 토마토 운반 트럭에서 질식사한 중국인 58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각국 정부는 불법 이주를 막기 위해 국경 통제와 범죄 단속을 강화하지만 수요가 있는 한 이를 근절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노동이민을 불법화하는 강력한 입법 조치는 이주 노동자들의 근로조건만 불리하게 해 고용주가 더 낮은 임금으로 이들을 고용할 수 있게 해줄 뿐이다. 밀입국 비용도 높인다. 현재 중국인이 영국에 밀입국하려면 3만 달러, 미국으로 가려면 7만 달러가 드는데, 이는 10여 년 전의 거의 두 배다. 밀입국에 성공하더라도 정규 노동시장에는 접근하기 어렵고, 노동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통상 동포 업자에게 고용돼 뒷골목 노동시장에 자리 잡게 된다.

 그렇다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 기업인 2000여 명이 이탈리아 프라토 지역 섬유산업의 약 25%를 소유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온 저임금 노동자 집단은 동유럽에 수출할 저가 ‘메이드 인 이탈리아’ 패션 상품을 만들기 위해 밤샘 일을 하는 등 착취당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선 중국 식당과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임금을 체불하고 팁을 빼돌리는 동포 고용주에게 맞서 종종 분규를 일으킨다. 미국 노동조합은 그들을 자국의 합법적인 노동계급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노동 당국의 도움 없이 업주와 맞서야 한다. 이민자를 고립시키고 그들의 노동력을 보호하지 않는 것은 사실 그들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떨어뜨린다.

 지금까지 동원된 어떠한 수단도 이주를 막지 못했다. 국가 정책과 이주 논리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이주자들이 부당한 착취를 당하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시민의 삶도 보호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정치인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반(反)이민 정서를 이용하려 든다.

 현재 북유럽·일본, 심지어 중국조차 고령화하고 있는 데다 사회 안정을 위해선 적절한 경제성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젊은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고려할 때 해외 이주는 세계적으로 긴박한 이슈다. 시의적절한 관심과 다국적인 조치가 절실하다.

피터 궝 뉴욕시립대 교수·사회학

정리=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