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집무실은 줄였지만…/이재학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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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광화문 정부 제1종합청사에는 총리실을 포함,10개 부처장관실이 있다. 대부분 청사 남쪽 끝에 자리잡은 이 장관실 옆에는 최근 20평 가량의 방이 하나씩 생겨났다.
지난달 11일 국무회의에서 70평 가량이던 장관집무실이 너무 넓고 호화스럽다는 이유로 20평씩 줄이기로 한데 따른 것이다. 큰 책상도 바뀌었다. 집무실이 개혁의 대상이 된 것이다.
윗물 맑기운동의 일환으로 검소함을 솔선수범 하자는 좋은 취지였다. 이에따라 통일원 등 각 부처가 집무실 축소공사를 마쳤고 교육부·법제처도 곧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준 사무실들의 남은 공간활용을 보면 국무위원들이 무슨 생각으로 집무실을 줄이자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통일원 장관실은 새로 만들어진 공간에 응접세트 등 사무실 집기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쌓여있고 총무처장관실의 경우 연구실이라고 문패가 적혀있지만 문고리가 늘 잠겨있다.
내무장관실은 소회의실이라고 문패를 달았지만 장관의 별도 접견실과 다름없고 정무1장관실은 「비상근」자문위원을 위한 회의실이라고 해놓고 있다.
정부종합청사는 극심한 사무실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있다. 총무처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이같은 부족을 메우기 위해 3천2백90억원을 들여 대전에 5만5천평짜리 정부 제3청사를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당장 공보처는 해외공보관실 등을 맞은편 미 대사관 옆의 독립청사에 남겨두고 광화문 청사에 입주할 것으로 알려졌다.
『과사무실이 들어서기도 마땅치 않은 공간이고,장관실 옆이라 선뜻 쓰겠다는 데도 없어 그냥 버려두고 있습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장관 집무실을 줄이는 공사에 평균 2백50만원에서 3백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장관들의 마음가짐만을 새롭게 하기위해 꽤 비싼 돈을 쓴 셈이다. 더구나 이 집무실 줄이기 운동은 광화문 청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2원14부 6처와 15개 청은 물론 15개 시·도지사,각급 자치단체장,서울시의 22개 구청장까지 기백개의 사무실이 이달말까지 대부분 「자율적으로」줄이게 되어있다.
검소함을 윗사람이 솔선수범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검소함을 위한 개혁추진이 원래의 뜻을 못살리고 또 다른 낭비적·전시적 한건주의로 드러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혁의 이면에 이런 현상들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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