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윤리적 점심」을 드세요”(특파원 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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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 공직자 윤리규정 강화… 접대비 삭감/워싱턴 식당가 손님끌기 새 메뉴 개발
미 백악관 뒤쪽 K스트리트는 「로비이스트의 거리」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각종 로비회사·법률회사가 밀집돼 있으며,자연스럽게 정부관리와 로비이스트들의 회동장소인 고급 레스토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런데 최근 빌 클린턴 행정부 출범이후 이들 레스토랑이 파리를 날리고 있다. 클린턴행정부가 공직자 윤리규정을 강화,행정부 관리가 외부인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식사대접의 상한을 20달러로 정해버렸기 때문이다.
○한산한 레스토랑
며칠전 우연히 K스트리트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들렀더니 메뉴판에 색다른 메뉴가 적혀 있었다.
「윤리적 점심」이라는 이름의 19달러99센트짜리 특별메뉴였다.
종전 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 1인당 평균 40달러 들었는데,클린턴행정부의 윤리규정 강화로 행정부관리나 로비이스트들이 올 수 없게 되자 주인은 손님확보를 위한 고육책으로 새 메뉴를 내놓은 것이다. 음식값은 윤리기준을 초과하지 않으면서 음식 내용은 과거와 같은 수준으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미 행정부가 이같이 공무원들이 대접 받을 수 있는 음식값까지 윤리규정으로 묶어놓은 것을 볼때 법만능주의의 폐해라는 느낌까지 든다. 2백만명이 넘는 연방공무원들이 매일 얼마짜리 식사를 하는지 일일이 감시할 수 없는 마당에 그처럼 사소한 것까지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의 고급 레스토랑들이 손님이 끊길 정도로 윤리규정은 잘 지켜지고 있었다. 공무원들 스스로 규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선물도 20불내로
미국 공무원들의 윤리의식은 선물에서도 나타난다.
우리 식으로 고급 양주 한병을 공직자에게 선물하면 이 선물은 거의 1백% 되돌아온다. 윤리규정에 업무와 관련,20달러이상의 선물은 받지 못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요즘 국내에서 공직자 재산공개가 일파만파를 일으키며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계기로 앞으로 공직자사회에 부정부패가 전혀 없는 맑은 풍토가 확립되리라는 기대를 하는 것은 아직은 지나친 낙관이라는 감이 든다.
결국 관건은 공직자 스스로가 공직자윤리를 지키려는 자세의 확립이다. 이는 단숨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사회 전체가 맑아지는 정도와 그 궤도를 같이 할 것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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