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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보이지 않는 분열선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호 27면

소설가 김훈은 400년 전의 답답한 역사를 묘사하며 이렇게 적었다. “밖으로 향하는 싸움보다 안의 싸움이 더 모질어….” 요즘 한나라당 경선은 두 주연배우에 국정원, 검찰, 몇몇 민간인이 가세하면서 더욱 모진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란스러운 선거판을 바라보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불안 섞인 실망감이 짙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깊어가는 야당의 집안싸움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우리에게 선거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되짚어볼 때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날 두 개의 분열선이 우리 선거 무대를 갈라놓고 있다. 하나는 선거전에서 실제로 대치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 세력을 가로지르는 선이다. 이 선은 너무나도 선명해 우리 모두에게 잘 보이는 선이다. 두 번째 분열선은 보이지는 않지만 세대 간에 깊이 패어 있는 선이다. 이 선의 한편에는 선거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을 당연하고도 흥미 있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주의는 두 개의 팀이 경쟁하는 과정이라는 슘페터의 가르침에 충실한 이들, 주로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들이 이 시각의 주인이다. 이들은 정치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으며 정치가 해낼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믿는 마지막 세대다.

보이지 않는 분열선의 건너편에는 선거가 너무 살벌한 전쟁터이면서 고리타분한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세대가 있다. 민주화 이후에 성장한 젊은 세대, ‘민주주의의 아이들’은 선거가 왜 그토록 엄숙하고 치열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정치는 단지 정치일 뿐! 헐--”, 이것이 젊은이들의 믿음이다.

보이지 않는 세대 분열이 지속된다면, 선거정치의 미래에는 무관심과 혐오만이 가득할 것이다. 386세대가 마지막 엄숙주의 세대가 된다면, 또한 젊은 세대가 정치에 대한 혐오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정치의 미래는 오직 암울할 뿐이다. 다시 말해, 보수와 진보의 건전한 공존만큼 절박한 과제가 선거정치의 엄숙주의와 발랄함의 화해이다. 이 같은 세대 간의 거리 좁히기는 선거가 갖는 교육의 역할을 회복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

선거는 한편으로 권력투쟁의 마당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중심가치가 발견되고 실현되는 과정이다. 선거를 통해서 사회의 통합과 개방성이 입증되고, 시민적 미덕이 발휘되어야 한다. 선거는 새로운 세대에 가치와 질서를 전수하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헝가리 이민 2세 출신으로서 프랑스적인 외모와는 거리가 먼 사르코지를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프랑스 유권자들은 자라나는 세대에 통합을 가르친다. 아프리카 유학생의 아들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대선 주자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미국인들은 젊은이들에게 개방 사회의 미덕을 보여준다.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 대운하를 논하기보다는, 의욕이 넘치던 1970년대 한국 사회의 풍경, 그리고 그 안에서 열심히 일하던 자신의 꿈을 젊은이들에게 발랄한 언어(?)로 전달할 때, 우리 선거도 교육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의 개인적인 문제를 따지기보다는, 21세기의 떠오르는 주역인 일하는 여성의 문제들을 함께 고민할 때 세대 간의 다리가 놓일 수 있다.

정치학자들은 정치가 밖으로 향한 전쟁과 안에서 하는 전쟁으로 이뤄진다고 가르쳐왔다. 밖으로 향한 전쟁이 공동체의 생존·번영·이익·위신을 걸고 싸우는 것이라면, 안에서 하는 선거 전쟁은 공동체의 방향과 질서를 결정하기 위해 종이(투표지)를 던지며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선거를 바라보는 세대 간의 입장 차이는 분명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 먼저 이러한 모진 전쟁을 끝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선거가 치열한 경쟁이면서 동시에 교육의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정치라는 직업이 미래에도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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