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9>] 匠人없이 명품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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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16면

연합뉴스

그들과 함께한 지난 며칠은 ‘붉은 비’ 속에 파묻혀버린 듯했다. 지난 17일 박지성의 명동 이벤트를 시작으로 내리기 시작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붉은 비는 18일 선수단 입국과 기자회견을 타고 굵어졌고, 20일 서울과의 경기에서 절정에 올랐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맨유라는 두 글자와 그 붉은색에 도취했다.

굳이 맨유가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구단이라고 숫자를 들어 말을 하지 않아도 안다. 경제지 포브스가 꼭 집어준 숫자보다 우리가 지난 며칠 동안 느낀 그들의 영향력이 더 훌륭한 저울이다.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보다 높다는 그 절대 지존의 가치. 그 가치를 맨유가 한국에서, 아시아에서 보여줬다.

그들은 명품(名品)이었다.

우리는 박지성을 통해 맨유를 얻었다. 맨유는 이미 준비된 명품이었으나 우리를 고객으로 맞아들이기 위해 박지성이라는 또 하나의 명품을 그 위에 얹었다. 그가 맨유의 유니폼을 입은 2005년 이후, 한국에서 맨유 없이 못 사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혹시 이번 맨유의 아시아 투어가 치밀한 마케팅 마인드에서 출발한 시장공략일 뿐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면 잠시 접어두자. 언뜻 미국산 쇠고기와 쇠똥이 생각난다.

그 명품의 행진을 보면서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장인(匠人)을 찾았다. 그 장인은 알렉스 퍼거슨(왼쪽) 감독이었고 그 곁의 데이비드 길 최고경영자(오른쪽)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조화로움이 맨유를 절대지존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한다.

퍼거슨의 리더십은 그가 맨유의 사령탑에 오른 1986년이 영국 축구의 암흑기라고 할 만큼 어두운 시대였기에 더욱 빛난다. 1985년 유럽챔피언스클럽컵 결승에서 무려 39명이 사망한 헤이젤 참사가 있었다. 그 이후 영국의 전체 클럽은 5년간 유럽 클럽 대항전에 출전할 수 없었다. 89년에는 경기장 스탠드가 무너지면서 95명이 사망하는 힐스보로 비극도 일어났다. 리그는 침체됐고, 클럽의 가치는 떨어졌다.

리그가 1992년 ‘프리미어리그’로 재탄생한 뒤 지금의 위치, 세계 최고의 리그로 성장하는 데 맨유는 그 중심에 섰고, 그 맨유를 한결같이 이끈 리더는 퍼거슨 감독이다. 팀을 숱한 우승으로 이끈 지도력은 말할 것도 없고, 스타플레이어 발굴과 팀 운영에서, 그는 어떤 기업의 CEO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진지했고, 열정에 넘쳤으며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데이비드 길은 구단 살림을 했다. 1997년 구단의 재정 담당으로 맨유와 인연을 맺은 길은 전임 CEO 피터 캐년이 라이벌 구단 첼시로 자리를 옮긴 2003년 CEO가 됐다. 그는 새 구단주 맬컴 글레이저와 퍼거슨 감독의 사이에서 조화로운 용인술과 경영전략으로 팀을 키웠다. 그는 맨유를 전 세계 7500만 명의 서포터스와 기업가치 1조4000억원짜리 최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 역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고,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지 않았다.

퍼거슨과 길. 명품 맨유를 조화롭게 빚어놓은 두 사람의 장인을 보면서 명품은 사람이 만들고 그 사람은 철저한 의식과 신념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진리를 또 한번 되새긴다. 그리고 묻게 된다. 한국 프로야구나 K-리그가 프리미어리그와 맨유 같은 명품을 원하는지. 그렇다면 장인은 어디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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