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과 달리 폭발하지 않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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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06면

이은철 교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원자력 궁금증 7문 7답

장미는 아름다운 꽃송이와 가시를 함께 갖고 있다. 원자력도 마찬가지다. 평화적으로 이용하면 전기를 얻을 수 있지만 무기로 사용될 경우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온다. 원자력을 둘러싼 궁금증을 문답형식으로 정리한다. <편집자>
 
① 체르노빌 사고 같은 폭발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유사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다. 체르노빌 사고는 기계·장비가 잘못되어 일어난 사고라기보다는 운전원들이 일곱 번에 걸친 연속되는 실수로 기기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국내 원전은 운전원들의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람과 기계가 서로 감시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또 원자로의 출력이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더라도 제어봉과 반응도 제어계통, 안전계통이 작동해 안정적으로 원자로를 제어하거나 정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격납 건물(철근콘크리트 두께 1.2m)을 포함한 다중의 방호막이 있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는다. 또 흑연 감속재 대신 물을 중성자 감속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감속재 발화에 의한 화재 위험이 전혀 없다.

② 원자력발전소의 핵연료도 폭발하나?
원자폭탄은 농축도가 100%에 가까운 우라늄235(또는 플루토늄239)가 일정 질량 이상이 되면 자동적으로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는 특성을 이용한 것으로 아주 짧은 시간(10만분의 1초)에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한다.
반면 원자력발전소는 장시간에 걸쳐 핵분열 에너지를 일정하게 방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천연우라늄이나 우라늄235가 2∼5%밖에 포함되지 않은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기 때문에 원자폭탄처럼 순간적으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 없다. 공업용 알코올에는 불이 붙지만 맥주는 아무리 많아도 불을 붙일 수 없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③ 원전은 항공기 테러에 취약한가?
원자력발전소의 최외곽 보루인 격납 건물은 외부 충격에도 원자로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설계돼 있다. 격납 건물이 일부 파손되더라도 내부의 원자로는 손상받지 않는다. 9·11테러같이 비행기가 충돌해 건물 전체가 무너지는 경우에도 수직으로 붕괴되지 않도록 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건물이 무너지더라도 원자로를 충분히 덮을 수 있도록, 즉 방사성 물질을 차폐(遮蔽)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미국 9·11사건 이후 미국 전력연구소(EPRI)는 항공기가 원자로 건물에 충돌할 경우의 영향을 조사했다. 건물이 손상을 입을 수는 있으나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방출될 위험은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④ 원자력발전소는 지진에 안전한가?
한국은 직접적인 지진대에 속하지 않지만 리히터 규모 4.0 이상의 지진이 몇 차례 발생했다. 그러나 원전은 리히터 규모 6.5에도 견딜 수 있게 내진(耐震) 설계를 한다. 한때 월성이 활성단층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 논란이 됐다. 그러나 지진 경험이 많은 선진국의 전문가들에게 평가받은 결과 문제가 없었다. 지층의 활동 재개 가능성이 탐지될 경우 발전소 가동이 중지되도록 준비하고 있다. 따라서 지진으로 인한 핵연료의 파손 가능성은 극히 낮다.
 
⑤ 원전에서 핵무기 만들 수 있나?
북한의 원자로는 전력 생산에는 효율이 많이 떨어지지만 핵무기에 사용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데는 효율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원전은 사용후 핵연료에 직접 폭발성 핵분열을 일으킬 수 없는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어 무기로 사용하기 어렵다. 일반 원전에서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고도의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가 아닌, 일정 지역에서 인명과 환경에 피해를 주는 정도의 폭발력을 가진 무기는 사용후 핵연료를 단순 처리하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이런 점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원자력발전소에 침입해 핵연료를 탈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세계적으로 원전 보안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⑥ 원전은 생태계를 파괴하나?
원전의 온배수(발전소의 증기를 냉각시키는 과정에서 사용한 바닷물이 사용 전보다 온도가 높아진 상태로 배출되는 바닷물이다. 방사선에 오염되지 않은 일반 용수로 화력발전소나 일반 산업시설에서도 배출되고 있다) 방출이 해양생태계에 주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원전 가동 이후 지난해 7월 말까지 온배수 피해보상액은 2177억원이다.
그러나 배수구에서 상승된 온도는 섭씨 5도 정도이며 긴 배수로를 거쳐 바다로 유입되므로 실제 바닷물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다.
 
⑦ 원전이나 방폐장 인근 주민이 질병에 더 많이 걸리나?
고리 1호기 주변에서 지난 29년 동안 자연방사능 측정치를 크게 벗어난 경우가 없었다. 1980년대 중반 전남 영광에서 무뇌아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역학조사 결과 원자력발전소와 무관한 것으로 판명됐다. 원전 주변 지역의 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고 보고된 사례도 없다.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이 운영됨으로써 주민들이 받는 방사선 양은 법적으로 연간 최대 0.1밀리시버트로 제한되는데, 자연방사선의 5%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따라서 기형아가 태어난다는 우려는 원자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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