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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하철 방화인데 피해 이렇게 다를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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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홍콩은 대구와 달랐다. 똑같은 지하철 방화사건이었지만 홍콩의 경우 14명이 가볍게 다쳤을 뿐이다. 우리는 왜 1백98명을 희생시켜야 했을까.

5일 발생한 홍콩 지하철 방화사건 당시 전동차에는 승객 1천2백여명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기관사.사령탑.승객이 3위일체가 된 신속한 대응으로 방화사태는 28분 만에 완전 진압됐다.

가스에 질식됐거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병원에 실려간 승객들도 당일 저녁 모두 퇴원했다. 경찰은 이날 시 외곽의 한 병원에서 화상 치료를 받으려던 55세의 남성을 방화 혐의로 붙잡았다.

◇발생=5일 오전 9시12분 12량의 T-61호 열차의 1호차에 탑승한 50대 남성이 신문지에 불을 붙인 뒤 석유통(4.5ℓ), 1회용 버너 가스통 다섯개와 함께 바닥에 던졌다.

순간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차량 안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찼다. 승객들은 방화범을 제지하고 비상벨을 눌렀다.

사고구간은 홍콩섬과 주룽(九龍)반도를 연결하는 빅토리아만의 바다 밑을 지나는 해저터널 구간이었다.

연기와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동차가 3백60m 떨어진 진중(金鐘)역에 도착한 것은 사건 발생 1분30초 뒤인 9시14분. 이때 진중역에선 역 직원들이 소화 및 의료장비를 갖춘 채 대기하고 있었다.

◇신속 대응=경보음과 함께 인터폰을 통해 사태를 파악한 사고 차량 기관사는 사령탑에 보고하고 승객들을 차량 뒤칸으로 대피시켰다.

사건 보고와 대처가 늦어진 때문에 역에 진입하는 다른 차량에까지 피해가 확산된 대구의 경우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탁월한 방재 장비 및 대응 시스템=전동차가 연기와 불길을 안고 달리는 동안에도 실내등과 환풍 설비는 계속 작동했다.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차량 내장재는 내연재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반면 사건 발생 직후 우리 지하철은 암흑상태로 변했을 뿐 아니라 지하철 안엔 불에 탈 경우 유독가스를 발생시키는 물질로 가득 차 있었다.

방화 설비도 완벽했다. 소화기는 물론 기관사와 통화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있었다. 통제실에서는 카메라를 통해 차내와 승강대를 지켜볼 수 있었다

대구 지하철은 지난해 방화 참사 이후 안전시설이 크게 보강됐다.

그러나 화재를 키운 가연성 내장재 교체 작업은 아직 지지부진하다. 예산을 제때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 구내 비상조명등 설치와 전동차 무선통신시스템 구축 등도 2007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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