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영리한 군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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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정보통신문화혁명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충돌과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터넷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지난번 대선의 경우가 그렇고, 최근의 다양한 사회운동.집합적 시위 등은 과거의 대중 학생운동이나 대중 노동운동의 시대를 지나 한국이 이제 새로운 형태의 '영리한 군중'의 반란 시대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일정한 위기상태에서 위기를 피해 도피하는 상황을 공황(恐慌.panic)이라 하며, 특정한 대상을 공격하는 군중을 폭도(暴徒:mob)라 한다. 그런 면에서 요즘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으로 무장한 채 강한 연대성과 신속성을 겸비한 세대가 출현해, TV드라마의 스토리를 바꾸고 선거문화를 뒤바꾸고 수십만명 이상의 군중을 동원하는 축제와 시위의 장을 만드는 모습들은 이들이 정말 '영리한 군중'인지, 아니면 '영리한 폭도'인지를 고민케 한다.

한국뿐 아니라 최근 몇년 동안 시애틀.퀘벡.다보스 등에서 보여진 반세계화 투쟁은 모여든 운동가들의 집단성.연대성.신속성에서 이들이 소심한 지식인들이 아니라 현대정보통신 무기로 무장한 채 세계화의 흐름에 저항하는 '영리한 군중'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의 폭력성은 분명 비이성적 폭동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최근 4월의 총선을 앞두고 과거와 달리 민심이 아닌 네티즌들의 '넷심(心)'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를 이기기 위해, 혹은 판을 바꾸기 위해 인터넷 등의 영역을 장악해야 한다는 절박성도 증가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인터넷 세대의 연대성과 문화적 동질성이 사회운동과 연계될 경우 리더의 부재가 초래할 부정적 파장이 훨씬 크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특히 무차별적 메시지의 전파와 이에 대한 참여행위는 익명성(匿名性)과 그 집단적 문화현상에 대한 개개인의 책임소재의 불분명성으로 인해 폭력성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속도의 신속성이 자칫 상상과 억측이 장을 주도하도록 만드는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런 속에서 한국의 정보통신혁명과 강점이 문화에서도 나타나려면 우리 네티즌이 정말로 영리한 군중이 돼야 한다. 새해, 영리한 군중들의 움직임을 기대한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