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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쉼] 유리천장 너머엔 대자연의 파노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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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바스카강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

빙하. 사전은 ‘육상에 퇴적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중력에 의해 강처럼 흐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사전다운 건조한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 빙하는 다르다. 빙하는 ‘조각가’다. 강처럼 흘러내리며 거대한 산과 계곡, 호수를 깎아낸다. 그 방대한 규모와 섬세한 아름다움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캐나다 앨버타 주의 재스퍼는 빙하를 ‘경외’하게 만드는 곳이다.

 

<캐나다 재스퍼> 글·사진=권호 기자

컨트리 가수의 여행 축하 공연

 13시간30분. 기차로 밴쿠버에서 재스퍼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하루의 반을 꼬박 달린다니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기차는 오후 5시30분발. 하지만 여행은 출발 1시간 전 이미 시작된다. 플랫폼 앞에 간이 무대가 차려지고 가수가 올라 컨트리 음악을 구성지게 뽑아낸다. DJ·반주·노래 1인 3역이다. 30대 젊은이부터 백발 성성한 커플까지 모두가 리듬에 몸을 맡긴다. 자분자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더없이 여유롭다.

 침대 칸에 올라탔다. 화장실과 세면대까지 딸린 객실은 꽤 아늑하다. 침대도 둘이나 된다. 혼자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짐을 풀자마자 금발의 여승무원이 왔다. 13시간 동안 220호 한 량을 책임질 매니저란다. 보드게임·빙고 등을 즐길 수 있는 오락 칸, 로키 산맥의 절경을 열차 꼭대기에서 즐길 수 있는 전망 칸 등 기차 내부 시설을 설명해 준다.

 드디어 열차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달리기 시작한다. 차창 밖으로 밴쿠버 시내, 곧 이어 교외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3시간쯤 지났을까. 익숙해진 풍경에 하품이 나올 무렵, 매니저가 식사 시간을 알린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세 명의 노인과 합석했다. 한 명은 호주에서, 나머지 둘은 알래스카에서 왔단다. 검은 눈의 젊은 동양인이 캐나다까지 와서 기차여행을 하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취재를 하는 게 아니라 취재를 받는 입장이 돼 버렸다. 식사는 성찬이다. 연어 샐러드와 두툼한 스테이크, 캐나다 와인까지 나온다. 기차에서 먹는 식사치곤 상당한 호사다.

 식사를 마치니 창밖에 어둠이 깔린다. 침대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한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기차 바퀴 소리가 살살 귓전을 간지른다.

 얼마나 잤을까? 새벽 어스름에 눈을 떴다. 차창 밖으로 산자락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햇살이 어둠을 걷어내자 로키 산맥의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난다. 녹색 옷을 곱게 차려 입은 우뚝 솟은 돌산. 산세가 웅장하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전망칸으로 향했다. 천장이 유리로 돼 있는 전망칸은 로키산 기차여행의 백미. 어제 객실 매니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 곳이다. 유리 천장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한 편의 파노라마 영화다. 푸른 하늘, 흰 눈이 듬성듬성 남은 로키산 자락, 기차 위를 뒤덮은 우거진 나무…. 오직 이곳, 로키 산맥에서만 볼 수 있는 장엄한 풍경이다. 넋 놓고 바깥 구경에 빠진 사이 방송이 흘러나온다. 곧 목적지인 재스퍼에 도착한단다. 13시간30분이 오히려 짧게 느껴졌다.

 빙하·호수·산·강 … 재스퍼 국립공원

 재스퍼에는 바다를 뺀 ‘모든 것’이 있다. 빙하·호수·산·강·계곡에 온천까지. 자연이 인간에게 허락한 거의 모든 것들을 한자리에서 즐기고 감상할 수 있다. 매년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이유도 그것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이 1907년. 무려 102년 전 일이다. 그 긴 세월, 큰 상처 입지 않고 잘 버텨준 자연이 고맙게 느껴진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안네트 호수(Lake Annette). 캐벌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 모이는 곳이다. 비취색 고려청자에 담긴 수정 같은 냉수. 물빛이 딱 그랬다. 호수임에도 작은 모래사장이 딸려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안네트 외에도 호수는 숱하게 많다. 퍼트리샤·피라미드·메디슨·허니문…. 규모와 빛깔, 분위기가 제각각인 호수들이 따로 또 같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호수를 찾아다니는 길, 근처 숲에선 야생 엘크와 로키 염소가 흔하게 눈에 띈다. 동물들은 한가롭게 거니는데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다.

 물이 흘러내려 만드는 폭포도 ‘그림’이다. 특히 아사바스카 폭포는 힘차게 내려치는 물줄기가 눈 덮인 산, 푸른 하늘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다.

 산도 놓칠 수 없다. 해발 2464m의 휘슬러 산에는 30인승 트램웨이가 다닌다. 8분이면 정상 1km 앞까지 닿는다. 오솔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아사바스카 계곡과 호수, 서쪽으로 옐로헤드 고개가 한눈에 들어온다. 7월임에도 드문드문 눈이 남아 있다.

정상에서 놓치면 안 될 것들.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먹을 거리를 찾는 다람쥐와 차가운 바람을 꿋꿋이 견디며 피어난 노란 꽃들이다. 직접 걸어 오를 수 있는 아사바스카 빙하도 재스퍼의 보물이다. 6개의 커다란 바퀴가 달린 설산차(Snow Coach)를 타고 5분쯤 가면 빙하 위에 직접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다. 한 잔 마실 때마다 1년씩 젊어진다는 빙하수는 덤이다. 재스퍼 남쪽 105km 지점에 있다.

TIP

■기차=캐나다 서부의 밴쿠버와 동부 토론토를 잇는 캐나다 철도(Via Rail) ‘캐나디안 라인’은 일주일에 세 차례(화·금·일) 있다. 오후 5시30분 밴쿠버 출발. 재스퍼 외에 에드먼튼·사스카툰·위니펙 등에도 선다. 밴쿠버에서 재스퍼까지 성인 침대칸 요금은 1466캐나다달러(1CAD=약 870원). www.viarailcanada.co.kr.

■가이드=수많은 호수와 산, 계곡에 빙하까지 있는 재스퍼를 ‘독학’으로 여행하는 것은 조금 버겁다. 돈을 좀 쓰더라도 가이드를 구하는 것이 시간 낭비 안 하고 여행을 풍성하게 즐기는 방법이다. 재스퍼에서 2시간 거리인 캘거리에 전문 가이드가 많다. 밴쿠버에 도착해 예약을 한 뒤 재스퍼에서 만난다. tourclick@hotmail.com, 1-604-321-8384, 요금은 차량 포함, 하루에 300 캐나다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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