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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구소·중국뒤져 사료발굴 유학생 탈출도와 북한선 적대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반도 반쪽 북한의 현대사 연구에 젊음을 쏟고 있는 러시아의 국립페테르부르크(구레닌그라드)대 극동역사학과 교수 란코프 안드레이박사(31).
독립국가연합의 수많은 역사학자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총각교수다.
지난해 가을부터 중앙대 안성캠퍼스 노어학과 객원교수로 와있는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에 도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등을 휘젓고 다니며 역사의 뒤안길에 사장되어 있는 배한의 현대사 사료를 발굴하고 있어 우리 사학계에 귀감이 되고 있다.
『북한역사는 한국 현대사의 반쪽입니다. 그런데도 서울에 와보니 북한역사에 대한 연구와 의욕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사학도로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길목에서 무엇보다 먼저분단의 역사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역사의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몇해 전부터 러시아· 중국엔 일본학자들이 대거 몰려와 북한 현대사 사료 수집에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광온 한국학자들은 있어도 사료 수집차 온 한국학자는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일본학자들이 자기 나라의 역사도 아닌 이웃 한국의 현대사연구에 그처럼 열을 쏟고 있는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안드레이씨갸 북한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레닌대학 4학넌 때인 84년 9월부터 85년 8월까지 1년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교환유학생으로 평양의 김일성대학에 유학, 북한사회를 체험하고 부터였다.
소련에 의해 창출된 북한정권이 레닌· 스탈린주의를 변형시켜「주체사상」으로 색칠한「북한식 사회주의」는 사학도의 연구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당시 사회주의 형제국이었던 소련과 북한의 관계때문에 재약이 많아 잠시 중단해야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꿈틀거리던 87년부터 다시 분식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먼저 해방후 김일성정권을 만들어낸 붉은 군대 고위 장교들과 외교관, 그리고 소련의 명령으로 북한에 들어가 당· 정 고위직을지내다 망명온 노혁명가들을 찾아 나섰다.
역사의 주역들이 죽기 전에 그들의 증언을 채록해두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 결혼을 미루고 박봉을 몽땅 털어 발로 북한역사를 쓰기로 결심했다.
3년여동안 모스크바· 하바로프스그· 알마아타· 타슈켄트· 사마라칸트등 소련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 50여명을 만난 안드레이씨는 이들로부터 생생한 증언과 사료를 얻는데 성공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역사의 핵심부분들이 구멍나있거나 깔리고 변색돼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김일성의 지도자 부상 과정▲소련의 도북한정책▲김일성과 한국전쟁▲50년대 피의 숙청▲모스크바와 평양의 갈등등입니다. 이제이 핵심부분들은 증언으로도 메워지고 있습니나. 그러나 한반도분단의 출발점이라 할수 있는 38선 결정 원인이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해방전에 참전했던 붉은 군대 고위 장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서울까지 진격하라는 명령읕 받고 원산을 거쳐 강원도까지 내려갔는데 갑자기 38선 부근에서 진격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받고 멈췄다는 겁니다. 왜 소련군부는 이같은 명령을 하달했는지, 소련·미국간의 묵계는 어떤 것이었는지등 역사의 수수께끼를 밝혀내는 것이 사학자들의 책무입니다.』
안드레이씨가 6년여동안 발로쓴 부한의 현대사는 모두 4백페이지 책 3권 분량.
그는 앞으로 이 기초공사를 토대로 지난해 러시아 정부로부터 특별허가를 받은 아르히브(고문서 보관소)특별 열람권을 활용, 체계를 세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북한역사를 연구하다보니 북한주민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게 됐다.
역사의 주체는 역시 인간임을 확신하게 됏다는 안느레이씨는 3년전 자신이 스스로 저질렀던 북한유학색 탈출사건 후유증으로 정작 북한에 들어갈 수 없는 신세가 됐다.
그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소련을 비롯, 동구에 유학중인 북한학생들의 정치적 망명이 들불처럼 번졌던 90년6월 안드레이씨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 모북한의 김책공대에서 온 주정철(당시 28세)이라는 유학생이 있었다.
그는 동독 유학생 호이스레러양(당시 29세· 현재 페테르부르그대에서 박사학위 준비중)과 열애중이었다.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은 미씨를 망명 위험이 있는 유학생으로 지목, 공관원 50여명을 공항· 역능에 풀어 그를 붙잡아 북한으로 강제송환하려 했다.
안드레이씨는 자신의 친구인 대의원(우리의 국회의원)집에 주씨를 숨겼다.
이를 눈치챈 북한 공관원들은 대의원집을 포위하는가 하면 안드레이씨를 미행하며 신변을 위협하기도 했다.
안드레이씨는 이를 무서워 하지않고 정보기관· 군대· 경찰등에서 일하는 대학 동창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 그들의 도움으로 북한 공관원들을 따돌리고 주씨를 독일로 탈출시켰다.
『역사학은 진실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나, 두 유학생의 사랑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인간의 가장고귀한 진실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나를 사회주의를 파괴하는 범죄자로 규정, 소련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나는 결코 정치석 범죄자가 아니고 인간의 가장 진실한 행동을 했을 뿐이라며 소련 당국자를 설득했습니다.』
북한의 현대사 연구를 끝낼 때까지 결혼을 생각지 않기로 했다는 안드레이씨는『북한역사의 진실을 캐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칠 생각』이라며 왕성한 의욕을 과시했다.

<김국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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