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명필 김생의 금석문유물 국립박물관 창고에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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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신라후기의 명필로 이름난 김생(711∼791년)의 유일한 금석문 유물이 국립중앙박물관창고에 방치된 채 썩고있어 뜻있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있다.
문제의 유물은 대자사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 일제하인 1918년 경북영주군영천면휴천리에서 발견,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옮져져 경복궁 근정전 처마밑에 기좌를 만들어 세워놓았던 것으로 75년이 지난 현재까지 문화재지정도 받지 못한 채 지금은 지하유물창고에 처박혀있음이 확인됐다.
서예가 김응현씨는 『김생은 우리나라 서예어1 찬연치 빛나는 최고의 명필가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그의 유묵으로는 이 탑비문이 유일하다』며 이른바 신필을 받치는 국보급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태자사랑공대사비가 세워진 것은 고려 광종5년(954년)으로 비문의 뒷면 음기끝 부분엔 비문의 글자가 신라인 김생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김생은 이규보의 『동국리상국집』등에 「어려서부터 서도에 정진, 일생을 바쳐 필법을 닦았으며 예서·행서·초서에 두루 능해 중국에서는 왕회지에 맞먹는 해동서성으로 알려져있다」고 기록돼있는 역사상 실존인물이다.
일제시대 일본역사학자들은 일찍이 이 유물의 중요성에 주목, 이 탑의 조성경위와 흩어진 내력을 상세히 조사해 보고서를 만들었으며 김석문의 대가 가쓰라기(갈성말치)는 그의『조선금석고』에서 경북봉화군하남면태자리 옛태자사터에 이 비석의 귀부(아래기단부분)와 이수(윗장식)가 남아있다고 적고 있다.
문화재관리국은『이 금석문의 열람과 탁본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박물관 유물창고에 보관돼 있는 상태로 응하지 못하고 있다』고만 말할뿐 어떤 연유로 아직 문화재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문화재위원들의 지정상신이 없기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측은『85년 경회루개축공사때 회랑에 서있던 다른 유물과 함께 일괄해 유불창고로 옮겼다』고 이 탑비가 창고에 있게된 경위를 밝혔다. 85년 옮기기 직전 찍은 사진은 이 비가 두동강 난채 포개놓은 형태이나 글씨명문은 확실히 판독할 수 있을 정도.
김응현씨는 고려태조때의 당대종 글씨를 모아 세운 집자비도 박물관창고에서 썩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처럼 국보급금석문유물이 국민들에게 공개돼 국민교육자료로 쓰이지 않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아직도 태자사터에 남아있을 것으로 보이는 귀부를 찾아내고 비신을 완전 복원시켜 문하재지정을 서둘러야한다고 주장하면서 특히『새정부출범이후 문화정책이 이런 그늘진 곳까지 밝히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안동문화원 유한상원장은 현재 태자사의 위치가 안동군도산면태자동으로 바뀌었으며 오래전에 가본 기억으로는 아직도 기단부분은 남아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이곳에 모조비를 세워 사적지정을 하든가 모두 경복궁내로 옮겨 문화재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임창정문화재위원은 현지답사를 서둘러 귀부등 유물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박물관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귀중 석물유산의 일괄 문화재지정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방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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