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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의 ‘컨설팅’ 효과 컸다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LG전자가 2007년 1분기 당기순손실에서 2분기 흑자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 430억원의 영업적자(당기순이익 480억원 흑자)와 올 1분기 1220억원 당기순손실(영업이익 1700억원 흑자)을 기록해 시장에 불안감을 줬다.

이 여파로 CEO가 바뀌고 연이어 조직 개편 등 대대적인 조직 개혁이 있었다. 하지만 2분기에는 영업이익만 1860억원이 넘어서며 당기순이익도 흑자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의 턴어라운드는 지난해 말 남용 부회장 체제 출범과 함께 강도 높은 조직 혁신이 진행되면서 내부 분위기가 바뀐 데서 출발한다. 2분기 실적 호전은 단순히 시장 상황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LG전자의 경쟁력과 제품의 질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긍정적이다.

초콜릿폰과 샤인폰이 이끄는 프리미엄 전략이 이번 실적 호전을 이끌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 부문은 단순히 많은 수량을 파는 것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LG전자의 올해 2분기 휴대전화 평균판매단가(ASP)는 159달러로 전망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됐다. 1분기 사상 처음으로 ASP가 삼성전자를 웃돌기 시작한 LG전자는 2분기에 그 폭을 더 넓혔다. 프리미엄 전략을 더 강화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LG전자는 2분기 휴대전화 판매량에서도 전분기 대비 20% 증가한 191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맞아 떨어진 프리미엄 전략

창사 이래 처음으로 ‘텐밀리언(1000만 대) 셀러’ 반열에 오른 초콜릿폰을 시발점으로 지난해 10월 출시된 샤인폰 역시 40여 개국에 수출되면서 판매량 200만 대를 돌파했고, 올해 3월 유럽에서 먼저 출시된 프라다폰도 600유로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출시 2개월 만에 유럽에서만 10만 대 이상 팔려 나갈 만큼 호조를 보이고 있다.

대신증권 박강호 애널리스트는 “기존에는 버라이존 등 미국의 통신망 사업자에게 대량으로 공급했던 LG전자의 휴대전화가 지난해부터 오픈마켓(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휴대전화 시장) 중심 전략으로 바뀌면서 단가가 급속히 올라갔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저가폰 역시 예상 밖으로 선전했다. 지난해까지 인도·중국·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신흥시장의 저가폰 출시는 철저하게 사업자 위주여서 물량 확대 이상의 의미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특정 저가폰 개발 프로젝트에 ‘수익’이라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저가폰 사업도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박 애널리스트는 “대당 50달러 이하짜리 저가폰을 출시하면서도 손익분기점을 맞춘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LG전자가 전통적으로 강한 가전부문은 환율 하락에도 꾸준한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선방했다는 평가다.

남용 부회장의 역할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한국투자증권 노근창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말부터 실시한 남 부회장의 개혁작업이 해외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해외 마케팅을 강조한 남 부회장의 경영이 휴대전화 판매에 큰 도움이 됐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남 부회장이 LG전자 CEO로 부임한 이후 변화가 많았다. 전략가로 소문난 남 부회장은 컨설턴트가 조직을 점검하듯 하나하나 바꾸기 시작했다.

LG전자의 한 직원은 “마치 전 부서가 컨설팅회사로부터 컨설팅을 받는 것과 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론가다운 조직 혁신이었다. 남 부회장은 제조업체인 LG전자를 마케팅 회사로 바꾼다는 계획 아래 마케팅 부서를 강화했다.

신설한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팀장은 P&G 출신의 한승헌 상무가 맡고, 소비자 트렌드를 조사하는 인사이드 마케팅팀에는 매킨지 출신 리서치 전문가 최명화 상무를 발탁했다. 또 본사 총 인원의 40%에 달하는 인력을 판매로 연결되는 각 사업본부 마케팅 현장에 배치했다.

해외 마케팅 조직의 경우 품목별로 운영되던 냉장고·세탁기 마케팅팀을 폐지하고, 미주·아시아·중동아프리카팀, 유럽·CIS(독립국가연합)·중국팀 등 지역 단위로 조정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마케팅의 핵심인 고객을 중심에 두고 있다. 개발에서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마케팅 프로세스로 단일화해 효율을 높이고, 한 지역 내 제품 간 통합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LG그룹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임원이라는 소문에 걸맞게 글로벌 마인드도 강조했다. “회사 매출의 85%가 해외에서 생기는데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지 않고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려고 하는가?”라는 게 남 부회장의 일관된 생각이다.

영어에 대한 남 부회장의 신념은 철석같다. 지난 1월 20일 경주 교육문화회관. 한국을 포함해 LG전자 전 세계 120여 개 법인장 및 지사장급 이상이 모인 글로벌전략회의에서 남 부회장은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형식의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참석한 350여 명의 임원급 중 150여 명이 해외에서 온 데다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 임원들을 위해 영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른 것이다.

이미 LG전자는 외국인이 참석하는 임원회의에서 영어로 회의를 한다. 또 혁신의 일번지인 창원공장에서도 영어로 전화하거나 대화하는 등 영어 열풍이 시작됐다. LG전자는 2008년부터 아예 영어를 한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쓴다고 공표해 놓은 상태다.

PDP 부문 분사 여부도 주목

사내에는 영어 트레이닝센터도 만들어졌다. 영어로 작성돼 외부로 나가는 메일이나 문서를 한번 체크해 주는 곳으로 이미 영어가 회사에 공용어로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원들은 이미 내년 영어 공용화에 대비해 전화영어 강습이나 학원 강습 등을 통해 영어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LG전자 관계자는 “‘그냥 한 번 지나가는 바람이겠지’하고 여기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영어 공용화를 넘어 아예 인재를 외국에서 뽑는다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이미 남용 부회장이 공표한 “‘C레벨 인재’ 중 일부를 외국인 중에서 뽑겠다”는 방침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C레벨’이란 CFO(최고재무책임자), CMO(최고마케팅담당자), CPO(최고홍보담당자) 등 각 분야에서 결정권이 있는 자리를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부문장도 포함될 수 있다.

아예 외국 사람을 뽑아서 영어 공용화에 대한 논란도 불식시킬 수 있고, 글로벌 기업으로서 외국 문화와 현지 정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인적구성을 만든다는 복안까지 깔려 있는 셈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미 외국인 인재 영입이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최근 LG전자의 턴어라운드는 제품력의 향상과 더불어 남 부회장의 개혁작업이 맞물린 결과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동안 기업 규모나 사업범위에 비해 한국적 기업과 문화를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었던 LG전자는 올해 전환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영어 공용화, 해외 인재 영입 등 부분적인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자체가 글로벌 기업으로 변화하기 위해 제2, 제3의 개혁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업구조 조정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수익이 나지 않고, LCD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PDP사업부가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증권가 복수의 애널리스트들도 “PDP사업은 일단 사업부 대신 분사 등을 통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일정기간 지켜본 뒤 분사 등 다른 조치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구원투수, 소방수로 평가받는 남 부회장이 이런 상황을 그냥 지켜볼 리도 없다. LG전자는 이제 변화의 출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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