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패배땐 누가 나설까/루츠코이 부통령 가장 유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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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군부신임 두터운 「시민동맹」 공동의장/소수민족 출신… 지도자로 부적합 하스불라토프/헌재소장… 대중적인기 없는게 흠 조르킨/현총리… 보혁넘나든 처신이 약점 체르노미르딘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정국위기 타개를 위해 비상조치라는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보수파의 대옐친공세가 오히려 강화됨에 따라 만일 옐친대통령이 패배할 경우 누가 벨리키크냐지(대공)의 지위를 차지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옐친 지지성명을 연일발표하는 등 「옐친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는 미국 등 서방측 일부에서도 『옐친 개인의 정치적 운명에 집착할때는 지났다』며 뉴 리더후보들의 면면을 짚어보면서 그들이 등장할 경우 러시아의 장래와 국제질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이 실각했던 지난 91년말에는 옐친이라는 뚜렷한 대안이 있었던 반면 이번에는 이렇다할 인물이 부각되지 않아 대상인물들의 약점을 찾아 하자가 있는 인물들을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후보를 압축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거명되는 루슬란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의장. 그는 의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수파 대의원들을 배경삼아 대옐친공세를 주도,강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악명높은 마피아의 소굴로 낙인찍인 소수민족 체첸족(1백30만명) 출신이라는 점이 1억5천만명의 러시아를 이끌 지도자로는 부적합하다고 지적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는 높은 지지를 받지만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을 묻는 조사에서도 1,2위를 다툰다.
다음으로 지목할 수 있는 발레리 조르킨 헌법재판소장은 지난해 「공산당재판」에서 옐친대통령의 공산당 불법화조치가 부분 위원이라고 판시,옐친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으면서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그는 정치적 고비때마다 중재역할을 자임,그 성가를 높여오고 있다. 이번에는 옐친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결정지을 위헌여부조사를 지휘,또한번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으나 대중적 지지기반이 없다는 것이 결격사유로 지적된다.
유리 스코코프 안전보장회의서기는 쿠릴열도 4개섬 반환을 요구하는 일본의 콧대를 꺾기위해 지난해 9월로 예정된 옐친대통령의 방일취소를 주장,관철시킨 장본인. 시사주간지 노보에 브레먀는 당시 그를 커버 스토리로 다루면서 「때를 기다리는 정치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언론기피증이 심해 일반인 사이에서 지명도가 낮은 것이 흠이다.
한편 지난해 12월 보혁합작으로 총리에 선임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은 개혁노선과 보수노선을 왔다갔다 하는 일관성 없는 처신으로 점수을 잃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 거명인사들이 약점을 안고있는 가운데 알렉산드르 루츠코이부통령이 현재로선 가장 손색없는 리더로 지목된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용맹을 떨친 공군소장출신으로 군부의 신임이 두터운 것이 최대강점이다. 또 그가 이끄는 자유러시아국민당이 정당인기 1위를 달리고 있으며,그 자신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선정됐다. 더욱이 원내의석 절반에 육박하는 동조세력을 확보한 최대연합정파 「시민동맹」의 공동의장이며,옐친대통령이 탄핵당할 경우 법적으로 대통령직을 자동승계할 인물이다.
이밖에 최근 『국민에 다시한번 봉사할 각오가 돼 있다』고 밝힌 고르바초프 등 몇몇 인사들이 자천타천으로 거명되고 있으나 모두들 결격사유가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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