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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인생역전’ 꿈꾸는 직장인의 희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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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호주 멜버른에서 귀국한 휴직자 이도경(30)씨. 지난해 7월 불안한 직장생활을 접고 법조인이 되기 위해 호주로 어학 연수를 떠났다. 글로벌 변호사가 되기 위해 영어는 필수조건이었기 때문. 그러나 여전히 불안감은 계속됐다. 당시 로스쿨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었고 법안 통과가 이뤄질 지 미지수였다. 최근 국회에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법안이 통과되자 이씨는 서둘러 귀국했다. 그는 “이제부터 차곡차곡 준비해 2009년 첫 로스쿨 신입생으로 꼭 합격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로스쿨이 ‘전문직’의 꿈을 이뤄줄 직장인의 희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로스쿨 법안이 통과된 다음 ‘평범한’ 삶을 버리고 변호사 명함에 도전하는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영어 손놓은지 10년 됐는데…”=‘로스쿨 진학 준비위원회’‘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들’ 등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는 매일 방문자가 1000명이 넘는다. 한 카페 회원은 “로스쿨 법안이 통과된 다음 신규 가입자 수가 하루 300여 명에 이르고 이중 직장인 비율이 30~40%”라고 말했다.

카페 소모임 코너에는 “6년차 직장인입니다. 수도권 소재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고 학점은 3.4인데 로스쿨을 준비해도 될까요” “가정의학과 개업 7년차입니다. 영어에서 손을 놓은지 10년 됐는데 다시 토플을 봐야 하나요” 등의 질문들과 구(區) 별로 스터디 모임을 구성하자는 게시글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LEET(법학적성시험)에 대한 정보 교류도 꾸준한 클릭수를 기록하고 있다.

종로ㆍ강남 등에 위치한 토론식 카페는 직장인의 점심시간 예약자 명단으로 꽉찼다. 로스쿨 준비반을 꾸리기 위해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가지고 찾은 이들이 적지 않다. 13일 낮 12시 T 카페 대학로점에 모인 장진우(은행원ㆍ32)씨는 “우리 그룹은 총 4명인데 2년차 직장인부터 10년차 직장인까지 나이도 직업도 다양하다”며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학로 부근의 직장인 중 로스쿨을 준비할 사람을 모집했다”고 말했다.

◇로스쿨 ‘신림동’ 지고 ‘직장가(街)’ 뜬다=연간 300억~400억원에 달하는 사시학원 시장이 로스쿨 붐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각 사시 관련 학원들이 고시촌의 대명사인 신림동보다 여의도ㆍ종로ㆍ강남 등 직장인 밀집 지역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강의 시간도 직장인을 끌어 모으기 위해 평일 저녁반과 주말반 등으로 새로 편성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미국ㆍ일본 변호사들을 강사로 확보하고, 커리큘럼도 대폭 개편하는 등 구체적인 행보에 나섰다.

한림법학원 조대일 부원장은 “직장인들의 문의가 하루 30여통에 이른다”며 “올 하반기에 강남ㆍ신촌ㆍ여의도ㆍ종로에 분점을 내 평일 저녁반과 주말반 편성을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솔트윅스 한국법학원의 김석배 실장은 “다음달 강남과 신촌 등 직장인이 많이 몰리는 곳에 LEET 등에 관한 자료를 제공할 계획”이라며 “정보력이 떨어지는 직장인들이 학원 홈페이지 상담코너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생 U턴’ 위해 야간대학원 필요=직장인이 로스쿨에 열광하는 이유를 복수의 '로스쿨 준비 직장인'에게 물은 결과 “전문직으로서 신분 상승할 수 있는 기회다” “능력에 따른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수 있는 적기다” “경제력, 안정성, 사회적 지위 등 세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등의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노통 신화’와 같은 고졸 법조인은 없어지는 것인가” “주간대학원이기 때문에 직장과 병행하며 학교에 다닐 수 없다. 퇴직하고 올인해야 하나” “사회 경험에 플러스를 주는 가산점제 도입은 없나” 등 로스쿨에 입학하기 어려운 직장인의 고민을 쏟아내기도 했다.

한상희 건국대(법학과)교수는 “대학을 나와 사회경험을 한 뒤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사회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후 입학하는 것이 다양한 전공의 법률가를 양성하는 로스쿨 취지에 맞다”며 “각 대학은 직장과 로스쿨을 병행하는 사람을 위해 야간대학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올인하는 것보다 사회 비용적으로 더 효율적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야간 로스쿨은 시기 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로스쿨 설립에 대한 세부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상희 교수는 “수업료, 경쟁률, 모교 인가 여부, 3년간 생활비 조달 방법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로스쿨 세부 가이드라인이 나온 뒤 진로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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