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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별로짚어보는칼럼] 군 가산점 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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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 평등

 최근 논란이 되는 군 가산점 제도는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합리적 차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선 그 내용부터 살펴보자.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군 복무자가 공무원 시험 등에 응시할 경우 필기시험의 과목별 득점 2% 범위 안에서 가산점을 준다. 또 다른 특징은 가산점을 받고 시험에 합격한 자의 비율이 선발 예정 인원의 20%를 초과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가산점을 받는 횟수와 기한도 제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현재 국회는 이 같은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

 참고로 과거 평등권 침해 등을 이유로 위헌 결정을 받은 군 가산점제는 총점의 3~5%를 가산점으로 주고, 응시 횟수와 기한에 제한이 없었다. 따라서 군 가산점제를 추진하는 이들은 과거보다 제한적인 형태인 이번 개정안에 대해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았으며 헌법정신에 부합된다고 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좀 더 정확한 법적 이해를 위해선 헌법이 정한 ‘평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헌법상 평등원칙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다. 특히 합리적 차별에 있어서 평등한 처우를 하지 못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면 차별이 있어도 그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헌법위반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오늘날 평등의 본질은 분배적 정의에 입각한 상대적 평등으로서 합리적 이유가 있는 차별의 긍정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어떠한 차별이 존재하고 그 차별이 설득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경우만 평등에 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국은 병역의무 이행자에 대해 합리적 차별에 따른 우대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은 공무원 채용 시 2년 이상 복무 제대군인에게 5~10점의 가산점을 부여한다. 그리고 학비와 교육 프로그램도 지원된다. 대만은 정부기관, 공영사업체와 공립학교 신규 임용 시 제대 군인을 우선 채용한다. 독일은 복무 후 직업교육과 취업알선 등을 하며 국가 차원의 사회보장을 한다. 

지성우 교수 (단국대·헌법학)
 
 ◆생각 플러스: 여성 공무원 채용 비율을 정해 합격시키는 여성고용할당제는 합리적 차별인지 말해 보라.

철학 … 남녀 차이와 평등 사이 '세 가지 접근'

 양성 평등을 둘러싼 철학적 입장은 평등과 차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데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자유주의 철학에 기반한 것으로 여기에서 평등은 ‘동일하게 대우받는 것’을 의미한다. 양성 평등 실현은 따라서 여성과 남성 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따른 사회적 역할과 공간 분리의 부당함에 대한 비판과 개선이 주를 이룬다.

 이런 관점에서 군 가산점제는 동일하게 대우받을 권리에 위배되는데, 여성은 군복무 기회 자체가 배제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다 해도 보상은 군복무 기간 내에 주어지는 것이 자유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바람직하다.

 두 번째 입장은 ‘다름’으로 평등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배제됐던 여성의 역할을 드러냄으로써 확장된 세계에 대한 이해와 전체 인간에게 더 이로운 평등을 추구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미국 윤리학자 에바 키테이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사적 역할이었던 ‘보살핌 활동’의 책임이 특정 성별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장돼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모든 사회 구성원이 보살핌의 책임과 혜택에서 공평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성의 역할로 고정됐던 출산·육아 문제는 남녀 모두의 문제가 돼야 하고, 따라서 사회는 남성에게도 유급 출산휴가를 줘야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세 번째는 ‘양성’이라는 범주 자체에 도전하는 입장이다. 여성은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없으며 계급·인종·성적 취향·장애 여부 등에 따라 평등을 보는 시각이 다양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예컨대 흑인 여성은 인종차별 때문에 백인 여성과 동일한 평등 이슈를 공유하기 어렵다. 이것은 동질성을 해체하고 차이와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에 놓여 있다. 따라서 군 가산점제도에 대해 일반 여성과 군복무를 하는 여성의 입장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집단 간 차이의 강조는 그동안 묻혀 있던 다양한 불평등 이슈를 다룰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민가영(홍익대 강사·여성학 )

 ◆생각 플러스: 군복무와 출산을 비교해 남녀 간 형평성을 주장하는 논리에 대해 비판하고 올바른 양성평등의 의미를 정립해 보라.

사회 … 약자 문제 냉담하면 차별 더 커져

 민주국가의 논란 가운데 하나가 의무·희생 정도에 따라 권리도 차별적으로 정해져야 하는가이다. 그래야 한다는 입장과 의무에 관계없이 국민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예컨대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이 적게 낸 사람보다 더 많은 권리와 혜택을 누려야 하는지의 문제가 여기에 속한다. 재산 있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줬던 근대 유럽 국가는 이를 긍정한다. 그러나 현대 선진 민주국가에서 이런 생각은 점차 사라진다. 세금을 적게 낼 수밖에 없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장애인이나 소수인종, 여성 등 소외계층으로 이미 차별받는 이들이다. 따라서 소수자 문제에 냉담하면 기왕의 차별은 더 커진다. 현대 국가들이 의무에 비례해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논쟁이 붙고 있는 군 가산점제는 이런 가치관적 갈등을 담고 있다. 남성의 병역의무에 대한 보상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남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약자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재 노동시장은 군 가산점제도가 적용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여성과 장애인에게 불리한 곳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여성 경제활동률은 70~80%인 반면 우리는 이제 50%를 간신히 넘었다. 또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계속 늘어 67%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학력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57% 선으로 다른 국가보다 20%나 뒤떨어진다. 또 임금은 여성이 남성임금의 60% 선으로 열악하다.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 역시 정부가 정한 2%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군 가산점제 개정안을 2006년 7급과 9급 공채 필기시험에 적용해 보면 7급의 경우 현재 여성 합격자의 31.9%, 9급은 현재 여성 합격자의 16.4%가 불합격 처리된다고 한다. 임용 고사 등으로 제도가 확대되면 여성의 정규직 취업 기회는 더 줄어든다. 모든 일에 앞서 사회 전 구성원이 기본적 평등을 누리는 공동체성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권인숙 교수(명지대·여성학)

 ◆생각 플러스: 사회 지도층이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게 타당한지 밝히라.

국방 … 국가에 대한 희생 배려 않는 게 역차별

 군 가산점제는 국가와 국민 보호의 신성한 병역의무 이행자가 불이익 당하지 않게 한 평등한 제도다. 국가·사회 유지에 필요한 봉사와 희생의 가치를 확산하고, 만연하는 이기심 제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국가안보를 외면한 채 평등만 주장하면 오히려 모두가 불평등해지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학업과 취업의 불리함을 감수하며 병역 의무를 이행한 젊은이들이 역차별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산점제도는 이 같은 역차별을 시정하는 평등한 조치이다.
 미국과 같이 세계적으로 강한 국가들도 군복무에 대한 혜택이 크다. 특히 전투지역 근무자는 파격적 대우와 보상을 받는데, 누구도 이를 시비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가산점은 군복무 젊은이들이 명예심과 자긍심을 갖게 하는 국가 차원의 배려와 보상이다. 더불어 봉사와 희생이란 올바른 가치를 정립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런 제도와 더불어 군은 국민의 귀한 자제들이 복무기간에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국가와 국민·공익을 우선하는 참가치에 대한 뚜렷한 신념으로 무장된 젊은이들이 되도록 지휘관들의 수준 높은 리더십도 필요하다.

 반면 남녀 평등은 최근 ‘여풍’ 현상이 입증하듯 우리 사회의 인재 활동 구조가 변하는 큰 트렌드에서 다뤄야 한다. 올해 외시 합격자 67%, 임용된 판사 64%, 검사 44%가 여성이며 전국 의대생의 40%가 여학생이다. 10년 내에 공무원 수에서 여성 초과시대가 오는 것이 현 시점이다. 이제 여성은 결코 남성에 비해 차별이나 홀대를 받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이 지적·태생적 능력의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며 또 현실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오히려 여성의 병역 특혜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평등한 사고라고 할 수도 있다. 군 가산점제도가 평등에 위배된다거나 여성 취업에 불리하다는 등의 지엽적 문제에서 벗어나 국가와 사회를 이끄는 바람직한 풍토 조성을 위해 출발했다는 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제정관 교수(국방리더십개발원장 )

 ◆생각 플러스: 국가안전보장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경우 그 한계를 설명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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