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투성이에 그냥 마시기도 찜찜 '공무원표 수돗물' 민영화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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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르면 2010년 민간기업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수돗물을 팔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와 수자원공사가 수돗물을 공급하지만 앞으로는 민간기업이 수돗물 품질을 놓고 이들과 경쟁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16일 경제정책 조정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물 산업 육성 5개년 세부 추진계획'을 확정했다. 계획에 따르면 민간기업도 지자체나 수자원공사와 마찬가지로 부가가치세 감면과 같은 세금 혜택을 받아 가며 수돗물 공급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경쟁으로 효율 올린다=수돗물은 그냥 마시는 시민이 5%가 안 될 정도로 불신의 대상이다. 또 수도관이 낡아 매년 새 나가는 수돗물이 8억4400만㎥(팔당호 저수량의 3.5배)에 달해 '낭비의 화신'처럼 여겨졌다. 지자체들은 수돗물을 원가보다 싸게 공급하면서 1조9000억원의 빚을 떠안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특별시와 광역시를 빼면 164개 수도 사업자 대부분이 영세한 탓이다. 589개 정수장 가운데 하루 생산량 5만㎥ 이하의 소규모 시설이 84%에 이른다. 지자체의 투자 재원도 부족하고 보직순환으로 인해 공무원의 전문성도 낮다. 그렇다고 수도요금을 올려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국내 수돗물 값이 외국에 비해 최대 4분의 1도 안 된다.

정부는 민간기업이 참여해 지자체.수자원공사와 경쟁하면 누수도 줄이고 수질 향상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영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한국환경경제학회는 지난해 "경쟁 체제를 도입하면 평균 37%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민영화 어떻게 진행되나=국내외 수돗물 회사들은 각자 자기 브랜드를 걸고 홍보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한 수돗물 회사는 '파리의 물(Eau de Paris)'이라는 브랜드로 생수 회사와 대결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서울의 '아리수(水)', 수자원공사의 'K-워터' 같은 브랜드가 있다. 민간기업이 참여하면 브랜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하천 유역별로 묶어 전국에 30개 정도의 수도사업자로 통합할 방침이다. 인근 지자체가 연합해 수도사업 분야를 민영화.공사화하거나 민간기업에 위탁하게 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오롱.삼성.GS.두산 등이 수도사업 참여를 준비하거나 관심이 있지만 정수장 운영 실적이 없어 시범사업으로 경험을 쌓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이미 1964년에 수돗물 공급을 민영화해 경쟁력을 키웠다. 프랑스의 수도사업 민영화를 바탕으로 베올리아사는 연간 매출액 31조원이 넘는 대규모 회사로 성장했다. 프랑스는 현재 6개 하천을 단위로 물 관리 기구를 설치하고 지자체 연합체가 베올리아사 같은 민간 전문기업에 수돗물 공급을 맡긴다.

◆풀어야 할 숙제=민영화 시 가장 먼저 닥칠 문제는 수도요금 인상에 따른 반발이다. 현재 수도요금이 생산원가의 82.8%에 머물고 있어 민간기업의 수익까지 감안한다면 20~30% 이상의 인상이 예상된다. 가격 인상은 수돗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부담하게 된다. 가격 인상폭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환경부 물산업육성과 윤웅로 서기관은 "연간 5500억원에 이르는 누수를 줄이고 경영을 개선한다면 요금을 많이 올리지 않고도 경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따른 공무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1만5000여 명에 이르는 수도사업 종사 공무원들의 고용 승계와 연금 수혜 문제가 논란이 될 전망이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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