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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서 중심 이동|홍대앞 젊은 문화 각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바람 부는 날에는 홍대 앞에 가야 한다.』얼마전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한 젊은 시인의 시 제목을 도용한 이 표현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되고 있다. 압구정동에 이어 홍대앞이 새로운 소비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홍대 앞은 신촌대학가의 주변부 정도로 인식되는 한적한 거리였다. 그러나 최근 이곳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은 이런 한적함을 크게 뒤흔들어놓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누가 더 개성적인가를 다투는 듯한 건물들의 다양한 모습, 중세 유럽풍의 장엄한 건물과 태양열 주택을 본 뜬 초현대식 건물들이 뒤섞여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주변 업소들의 종류도 다양해져 최근 록카페·로바다야키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 주변은 한마디로 홍대 앞이라 묶어버리기 어려울 정도로 구역별로 특성이 명확치 구분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홍익대 정문에서 홍대전철역 방향으로는 값싼 음식점들이 모인 이른바「먹자골목」이 있고, 극동방송국 쪽으로는 이국적인 건물들이 즐비한「카페골목」이 자리잡고 있다.「먹자골목」이 그 가격·설비 등에서 소박한 개방성을 보여준다면 「카페골목」은 출입자에게 세련된 취향을 요구하는 일종의 폐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대비를 이룬다.
이곳에 자주 들른다는 한 학생은『교통이 편한데도 별로 붐비지 않아 좋습니다. 또 카페나 레스토랑이 개성적인 것도 맘에 들어요』라고 말한다.
「카페골목」의 카페들은 독특하다. 건물 전면이 통유리로 돼 있는 홍대앞 명물「카페 나인」은 그 개성의 극단적인 예가 될 듯하다. 바깥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돼있는 이 카페의 구조는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의 자기과시적 욕구를 교묘히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압구정동의「오렌지족」들이 대거 홍대 앞으로 진출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문화공간으로서의 홍대 앞 거리는 압구정동과 엄연히 구별된다.
무엇보다 이곳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고정된 문화공간이 이미 형성돼 있었다. 따라서 유흥자본의 주도 하에 형성된 압구정동문화의 경박성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또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연령·직업 등에서 대단히 폭이 넓어 20대 초반만 돼도 소외감을 느낀다는 압구정동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90년대 들어 소비 문화적 징후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홍대 앞 문화는 그러한 소비문화적 징후가 청년문화의 지배적인 형식으로 대두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지난해 「압구정동현상」에서 그랬듯이 소비문화에 대해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지나치게 단순했다. 소비가 너무나 일상적인, 그래서 그것이 자기표현의 중요한 수단이 돼 버린 세대에게 근면과 절약을 역설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것처럼도 보인다.
홍대 앞은 적어도 압구정동처럼 「욕망의 즉각적인 해소」라는 저급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아니라 이를 감각적 세련성으로 포장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카페골목의 세련된 장식이 보여주는「기호의 차별화」라는 전략의 위험성은 반드시 지적돼야할 것 같다.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은 멋진 분위기를 향유하기 위해 3천5백원이나 하는 커피 값을 기꺼이 지불한다. 그리고 이것이「남들과 다른」자신들의 기호에 맞기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이러한 기호의 차별화는 3천5백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1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사람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을 교묘치 은폐한다.
그곳 한 카페의 카운터 옆에는 미국독립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천국보다 낯선 곳』의 칙칙한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조금 과장해 말하면 그 휘황함 때문에 역사를 잊게 만드는 이곳의 이국적인 카페야말로 소비가 미덕이 아니라고 배우면서 자란 세대에게는「천국보다 낯선 곳」이었다.<임재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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