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유전쟁] 28. 세계 명문고 탐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1990년대 초 미국.일본 지도자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교육혁명'을 21세기의 키워드로 제시했다. 교육혁명이야말로 앞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동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일제히 국력을 모아 교육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십년간의 골칫거리였던 '입시 지옥'을 깨뜨리기 위해 고교 평준화 정책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그 속에서 한숨을 돌리고 있던 중이었다. 중학교 의무교육제 시행으로 초등생은 입시 지옥에서 해방됐지만 고교 입시 과열 현상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혁명을 하듯 고교 평준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반짝 성과'를 거뒀을 뿐이다.

이 같은 교육정책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쳐야 하는 글로벌시대에 과연 효과적일까. 아니었다. 세계 각국은 미래를 교육에 걸고 교육 개혁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평준화의 침상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꼴이었다.

나는 해외 명문 고교를 거의 모두 찾아다녔다. 특히 미국 명문 사립고인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초트 로즈마리 홀, 그리고 영국의 이튼 칼리지를 집중 연구했다.

이튼은 내게 교육의 사명을 일깨워준 학교다. 1440년 헨리 6세가 설립한 이 학교는 5백6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개교 당시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학생 정원은 1천2백20명, 교사 수는 정규직만 1백60명이다. 한 교사가 여덟명의 학생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으로 특정 분야 전문가 15명과 음악가 55명이 강의하고 있었다.

드넓은 캠퍼스 안에는 25개동의 기숙사와 그림 같은 호수를 비롯해 도서관.실험실.체육관.콘서트홀.실내수영장 등을 갖춘 그야말로 '꿈의 학교'였다.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는 새뮤얼 필립스 부부가 1778년 뉴잉글랜드의 시골에 세운 작은 학교에서 시작해 명문으로 발돋움했다. 1973년에는 뉴잉글랜드 최초의 여학교인 애보트(1828년 설립)와 통합했다. 모스부호로 유명한 과학자 새뮤얼 모스와 부자(父子) 대통령인 조지 부시와 조지 W 부시의 모교다. 학급당 학생 수는 14명, 정규직 교원 수는 1백63명이다. 교사와 학생의 비율이 1대 6이다.

초트 로즈마리 홀 고교는 메리 A 초트와 그의 남편이 1890년 세운 여학교와 6년 뒤 설립한 남학교를 1981년 통합해 만든 학교다. 미국 동부지역 최고 명문고교이자 전 세계에 영재교육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케네디가 형제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지도자를 배출했다. 총 학생 수는 8백50명, 교원 수는 1백20명이다.

이들 학교에서는 입시를 대비한 주입식 및 암기식 교육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교실에서나 10명 안팎의 학생과 교사가 어울려 활발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교사는 칠판에 쓰고, 학생은 이를 베껴 쓰는 일반적인 우리나라 학교의 교실 풍경과 아주 달랐다.

최명재 파스퇴르유업 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