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은 대화 실 거두려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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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자당 중진들과 「경실련」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안의 여러 경제문제들을 토의하는 모습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케 한다. 집권당의 중진의원들이 대중음식점에서 온건한 진보주의 단체로 알려진 지식인들과 자리를 함께하며 실명제를 토론하고 임금문제를 설득하는 모습은 보기에 좋다.
이미 전노협 전교조 간부들이 청와대를 찾아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는 일까지 있었다. 여기에 청와대 주변길이 열리면서 청와대에 직접 민원을 호소하겠다는 행렬이 늘어나고 있어 비서실 정문에 민원 창구를 설치했다고 한다. 이 모두가 문민시대의 새 모습,새 풍속도로 높이 평가할만한 일이다.
정부와 집권당이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동참한다는 뜻에서 이런 일련의 격의 없는 대화는 더욱 폭 넓고 깊이 있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런 대화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선 다음 몇가지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에 반영하려는 진솔한 의지가 있다면 결코 겉모양에만 집착해서 대화의 모임을 갖는 1회적 인기영합의 행사로 끝내서는 안된다. 회식 한번 하고 사진 한장 찍는 것으로 넘어가서는 서로가 인기영합의 제스처로 끝날 위험이 있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신선한 모습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정치쇼로 비쳐 국민들의 기대도 사라질 수 있다.
겉모양에 치중하기 보다는 실질적인 의견수렴과 정책반영을 위한 대화라면 보다 내실에 치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단순히 권부의 상징인 청와대에 노동운동가들이 찾아갔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그보다는 찾아간 다음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그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또 오늘날 같이 복잡다기한 산업화 시대속에서 아직도 목가적 발상의 신문고식으로 올바른 민의를 수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예컨대 청와대 민원실의 성가가 올라가면 이젠 너나 할것없이 모든 민원은 청와대 쪽으로 쏠릴 것이다. 각급 정부 부처마다 민원 상담실이 있고 민원봉사실이 있지만 그 어느 민원실 보다 청와대 민원실이 최고의 해결사라고 본다면 기존의 민원접수실은 어떤 기능을 하게 될 것인가.
정부와 민간이 대화와 토론을 나눌 수 있는 자리와 기회를 공유하는건 문민정부의 장점임을 이제 우리가 실감하고 있다. 이런 엄청난 변화의 모습이 참다운 개혁으로 연결되기 위해선 겉모양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대화와 토론의 자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 여론 수렴이라는 과정도 지나치게 즉흥적이거나 직소식이어서는 오히려 음해와 갈등을 증폭시키는 또다른 폐해를 낳을 수도 있다. 때문에 민원접수나 여론 수렴방식도 기존 체계와 절차를 중시하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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