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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문화의 ‘짬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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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27면

“중식당에 들어서면 먼저 나오는 것이 단무지와 양파잖아요. 물론 요즘 고급 중식당에서는 자차이(搾菜)와 땅콩절임이 나오기도 하지만요. 잠시 자장면을 시킬 것인가 짬뽕을 시킬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우동을 먹기도 하고요. 한 그릇으로 양이 차지 않을 것 같으면 야끼만두도 시키죠.”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다. 그래 뒤섞인 한·중·일 음식문화에 대해 말하려는 게지. 다꾸앙, 짬뽕, 우동, 이것 모두 일본 음식이잖아. 게다가 군만두를 흔히 ‘야끼’만두라고 부르고.”

“그렇죠. 다꾸앙은 일본의 김치 또는 장아찌라고 할 수 있는 즈게모노의 하나인데 한국식으로 변형되어서 단무지라 부르게 되었죠. 짬뽕은 중국 푸젠(福建)성 출신으로 일본 나가사키에 정착한 첸핑순이 1899년에 만들어낸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죠.”

‘시카이루(四海樓)’라는 식당을 운영하던 첸핑순은 동포 고학생들이 배곯는 현실을 안타까워해 식당에서 쓰다 남은 해산물이나 채소 부스러기를 볶다가 닭이나 돼지 뼈를 곤 국물에 국수를 말아내 그들을 먹였다. 이것이 짬뽕(ちゃんぽん)의 원조라고 한다.

“그런데 나가사키 짬뽕은 우리 중국집의 우동에 가깝지. 한국에 건너온 뒤에 빨갛고 매운 짬뽕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고. 결국엔 한·중·일을 ‘짬뽕’한 것이 우리 짬뽕인 셈이네.”

“우동(うどん)이라는 말이 중국집에서 쓰이는 것도 재미있죠. 더 재미있는 점은 일본에서 우동의 한자어가 '饂飩’인데 이는 중국에서는 ‘훈툰’이라는 만둣국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물만두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지만 국물이 넉넉해 숟가락으로 떠먹는 중국의 대중적인 아침식사잖아요.”

“그러니까 중국의 훈툰이라는 만둣국이 일본으로 건너가 우동이라는 국수가 되고, 이 우동이라는 말이 한국으로 건너와서는 중국집에서도 쓰인다는 말이지.”

“네 그렇죠.”

“잠깐, 이제부터는 우리가 쓰는 만두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소가 없는 발효된 흰 빵 ‘만터우(饅頭)’를 가리킨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중국에서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소를 넣는 것이 자오쯔(餃子)고, 발효된 밀가루 반죽에 소를 넣은 것을 바오쯔(包子)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것들을 만두라고 부르고. 일본어 ‘야끼’가 붙은 만두는 결국 교자(자오쯔)를 구운 것이 되고 말이야.”

“일본에서는 만두와 교자가 우리가 만두라고 부르는 것을 말하지만, 만두의 경우에는 밤(栗)만주와 같이 단 과자인 ‘만주’를 일컫기도 하죠.”

“그러면 우리가 교자만두라고 쓰는 말도 신조어라고 보아야 할지 모르겠군.”

“어쨌든 동아시아의 음식문화는 이처럼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죠. 특히 화교가 정착해서 만들어내는 중국 음식은 그 지역에 맞게 변하죠. 따라서 짬뽕은 그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일본에서도 ‘짬뽕’이라는 말이 ‘여러 가지가 섞이다’라는 뜻으로도 쓰이죠. 사실 오늘날에는 세계 각국의 음식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음식의 현지화·재현지화 현상이 특별한 것은 아니죠. 우리의 경우에는 식민지 상황을 겪으면서 음식문화가 더 ‘짬뽕’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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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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