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용」 탈락의 우리경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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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는 「아시아의 4마리의 용」에서 탈락했다. 지금까지 4마리의 용에서 더 올라가 본 선진국대열에 들어서게 될지 모른다는 환상도 여지없이 깨졌다. 한국의 강등은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 및 사회 전반을 이끌어가고 있는 우리의 원동력이 쇠잔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슴아픈 경고다.
세계은행은 최근 「동아시아및 태평양 연안국가 개발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더이상 「용」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 국제기구는 경제성장 내용과 국가구성의 변화,그리고 국민생활의 수준 등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우리나라를 「아시아의 신호랑이」로 한 등급 낮춰 분류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강력한 경쟁 상대국으로 여겨왔던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한발 앞서기는 커녕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지금 우리의 경제적 등급 격하를 그저 국가적 자존심의 손상이나 수치로 여기는 것은 때늦은 일이다. 이미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샴페인 잔을 터뜨렸으며 생산보다 소비면에서 선진국 흉내를 내왔다. 우리의 지나침에 대한 비아냥을 듣고도 그저 한탄했을 뿐이지 나라의 에너지를 국력신장으로 모으지 못했다.
88년 서울올림픽이 경제적 재도약의 발판이 되지못했는가에 대한 반성은 지금도 늦지 않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잠복되어 있는 비효율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국민의 참여의욕을 꺾는 관습과 제도를 서서히 고쳐나가야 한다. 국력의 쇠퇴는 제대로 돌아가야할 공장이 돌아가지 못하고 기업인들이 더 이상 제조업 투자를 꺼려하며 더 근본적으론 사회 각 분야에서 제할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데서 나타난다. 한 나라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제조업의 침체가 오늘날의 영국이나 미국의 경제력을 얼마만큼 참체시켰는가. 우리경제엔 앞으로 2,3년이 중요하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미 세계는 격심한 경제전쟁 시대로 들어갔으며 국민과 기업인,그리고 정치인이 정신차리지 못하면 우리는 아예 이무기 신세가 되겠기 때문이다.
우리의 높은 경제성장 원동력은 「우리도 하면 된다」는 신념이었다. 그 신념을 다시 보여 주어야 할 때가 지금이다. 우리는 국제화와 자유화라는 큰 역사적 물줄기에 따라 비생산적인 것,비효율적인 제도를 고쳐 나가야 하고 개방의 확산과 발전에 적응할 우리의 의식을 달리해야 한다. 지도자들이 앞장서면 국민은 반드시 따라간다. 그들이 정신차리지 않으면 우리의 국력하강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근로자들도 이제 세계의 주요시장에서 버림받고 있는 한국상품을 우리의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 우리생활터전의 붕괴로 인식해야 한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노동의 질과 생산성에 대한 심각한 검토와 반성도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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