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로봇이야기

몸속으로의 로봇 여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원자 축소술로 사람들이 탄 잠수정을 초소형화하여 인체 내를 돌아다니며 병을 치료하고 적과 싸우는 공상과학 영화는 대표적인 게 두 편이다. ‘환상여행’(1966)과 ‘이너스페이스’(87)로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는 재미있고 환상적이었다.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예술가들은 박테리아와 싸우는 이런 영화 속 로봇을 그리지만 미래의 꿈으로 생각한다. 그 당시 공학자들은 이 로봇이 2018년 또는 2025년께 나올 걸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 로봇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꿈속의 환상이 아닌 이미 손에 잡히는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인간 근육보다 더 강력한 스마트 고분자 소재, 초소형화를 위한 마이크로 제조기술, 인체의 신비를 규명하기 위한 나노 바이오 기술의 발전이 눈부시게 이뤄졌고, 영화가 나온 이후 20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필자가 책임을 맡은 산자부 연구기획사업 ‘혈관 치료용 마이크로 로봇’은 기술개발뿐 아니라 개발에 따른 구체적인 시장까지 얘기한다. 이미 돼지 동맥의 강한 혈압을 이기고 이동 방향을 조종하는 기술이 캐나다에서 개발됐다.

 20년 전의 영화 내용과 현재의 연구개발 사업을 한번 비교해 보자. 공상과학 영화와 달리 연구개발 사업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기술만을 대상으로 한다. 원자 축소술은 불가능한 것으로 영화의 재미를 위해 설정했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 얼마든지 작게 만들 수 있다. 영화에서 로봇(잠수정) 크기는 1마이크로m(100만분의 1m)이고 연구사업에서의 로봇 직경은 1㎜이므로 영화에서보다 천 배나 더 크다. 영화에서는 뇌혈관에 피가 굳어 쌓인 혈전 치료가 목적이고, 연구사업에서는 심장 부위의 혈전 치료가 목적이다. 여기서 로봇은 무조건 작을수록 좋은 게 아니고 혈전을 쉽게 제거할 수 있는 크기가 좋은 것이다. 주사기로 로봇을 혈관에 주입하는 방식은 영화나 연구사업 모두 동일하다. 현재의 큰 주사기로 충분히 가능하다. 영화에서는 혈관·소화기관·눈 등 인체 내부를 다 돌아다니는데 연구사업에서는 혈관만 돌아다니도록 구상했다. 영화에서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인체 경로를 알려준다. 연구사업은 첨단 의료기술인 컴퓨터 단층촬영, 또는 자기공명으로 사전에 표준 인체 경로지도를 만든 뒤 로봇이 돌아다닐 때는 초음파로 실시간 경로를 추가한다. 영화에서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불을 밝히고 다니지만 실제 혈관에서는 그렇게 하면 볼 수가 없고 대신 초음파를 사용한다. 영화에서는 레이저 칼을 사용하는데 실제로도 가능한 기술이다. 그러나 본 연구사업에서는 초음파 진동 등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쓴다. 영화에서는 눈물을 통해 잠수정이 빠져나오는, 정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방법인데 연구사업에선 외부에서 조정해 주사기로 다시 로봇을 빼내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연구 기획을 끝내기 전까지는 한번도 두 편의 영화 내용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막상 해놓고 보니 두 영화 내용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았다. 환상이 큰 무리 없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덧붙여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마이크로 사람들이 몸 주인에게 위암이 있다고 떠들고 주인은 스트레스를 받아 위산이 폭포처럼 쏟아져 적을 녹이는 장면이다.

 다른 중요한 기술은 로봇이 혈압을 이기면서 이동하는 방법과 필요한 에너지를 어떻게 확보하는가다. 영화에선 프로펠러를 사용하여 이동한다. 그러나 현실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강한 혈압을 이기면서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급격한 에너지 소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쉬운 해결 방안은 자체 에너지 소비 없이 외부에서 자석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자기공명에 의한 에너지 전송 방식도 있지만, 쉽게는 그냥 기다란 줄을 달고 다니면 된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의 의미도 크다.

 선례가 없는 기술은 개발하는 데 위험 부담이 따르지만 원천기술과 특허 선점이라는 더 큰 소득을 거둘 수 있다. 그게 선진국이 가는 길이다.

박종오 전남대 교수·기계시스템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