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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의 거짓말 vs. 제이콥의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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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을 다시 보게 만든 한 주였다. 디카프리오가 분한 극중인물 프랭크는 거짓말과 위장의 천재였다. 그는 단지 고등학생이었지만 자신을 파일럿으로, 의사로, 변호사로 쉼 없이 위장하면서 그것에 속아 넘어가는 세상을 한껏 조롱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픽션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에 근거한 것이다. 실존 인물 프랭크 W 아비그네일 주니어는 16세에서 21세까지 5년 동안 미국과 유럽 등 26개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위장하면서 250만 달러 상당의 위조 수표를 남발했다.

 사실 앳돼 보이는 그가 만든 위조 수표를 받아줄 은행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항공사 파일럿에게 은행에서 특별대우를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된 프랭크는 파일럿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물론 프랭크는 파일럿이 되기 위해 항공학교로 진학하기보다 곧장 항공사 유니폼 하나를 맞춰 입고 스스로를 파일럿으로 위장하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그의 파일럿 행세에 깜빡 속은 은행 여직원의 손을 거쳐 프랭크의 위조 수표는 진짜처럼 통용되기 시작한다. 거대한 위장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일단 ‘위장의 맛’을 본 프랭크의 거짓 행각은 더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대학 근처에도 못 가본 그가 하버드 의대 졸업장을 위조해 아동병원의 의사로 취직했다. 그것도 모자라 결혼할 여인을 유혹하기 위해 변호사로도 둔갑했다. 결국 프랭크는 20여 나라를 넘나들며 거짓과 위장을 일삼다 1969년 프랑스에서 체포된 뒤 프랑스와 스웨덴, 그리고 미국의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는 수감생활 5년 만에 가석방됐다. 자신의 천재적인 위장술을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게 전수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속고 속이다 못해 그 속임수마저 전수받아야 하는 요지경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가 하면 로빈 윌리엄스가 열연한 ‘제이콥의 거짓말(Jakob The Liar)’이란 영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한 폴란드 내 유대인 게토지역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분한 제이콥은 야간 통행금지를 위반해 끌려간다. 그런데 거기서 그는 우연히 폴란드 가까운 지역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물리쳤다는 라디오 방송을 엿듣게 된다. 그 뒤 운 좋게 처벌을 면한 제이콥은 게토로 돌아와 라디오에서 들었던 ‘희망의 메시지’를 조심스럽게 퍼뜨렸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퍼져나간 제이콥의 메시지, 즉 “폴란드 가까운 곳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물리쳤다”는 입소문은 사람들에게 살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사람들은 제이콥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줄 라디오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기 시작했다. 물론 제이콥에게 라디오는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라디오가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게토 안의 모든 유대인이 제이콥의 있지도 않은 라디오를 통해 나올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고대하고 또 갈구하고 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이콥의 거짓말이 시작된다. 제이콥은 연합군이 나치를 물리치고 진격하고 있다는 거짓 뉴스를 중계하면서 게토 안의 사람들에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프랭크와 제이콥 둘 다 세상을 속였다. 하지만 프랭크와 제이콥의 거짓말이 어떻게 다른가는 삼척동자도 안다. 거짓말이 아예 없는 세상을 기대할 순 없다. 하지만 제이콥의 거짓말은 찾아보기 힘들고 프랭크의 거짓말만 난무하는 이 세상을 향해 우리는 뭐라 말해야 할까? 차라리 우리도 누구처럼 프랭크의 거짓과 위장술이라도 전수받아야 한단 말인가. 정말이지 세상은 갈수록 요지경 속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