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말되는 세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여보, 오늘 차 좀 두고 가세요. 윤회 면회를 가야겠어요.』 아내의 말이 귓결을 스치는 순간 표철씨의 가슴은 심하게 떨렸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회사에 출근해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이 아니었다. 딸 윤회면회를 간다는 말 때문이었다. 윤회는 지금 서울구치소에 구금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고있던 윤희는 지난달 초순, 체포되어 갇힌 몸이 되었다. 뇌물을 받고 제자를 부정입시 브로커에게 소개했다는 혐의였다.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해 쩔쩔매던 아이가 사회의 지탄을 받는 그런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윤회의 말로는 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가지 못할 딱한 처지의 제자를 구제한다는 마음으로 대학에 붙게해 주겠다는 동료교사에게 그제자의 어머니를 소개했을 뿐, 돈같은 것은 일절 받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세상은 딸아이의 결백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느 수사관도 그녀의 변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기야 애비인 표철씨도 딸아이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도리어 그 가능성에 표철씨는 심장이 떨렸다. 그 떨림은 의식의 표면을 뚫고 치솟아 오른 과거의 기억을 동반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윤회는 이른바 촌지라는 봉투를 받고 여간 번민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것을 끝내 돌려주지 않고 제 용돈으로 쓰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한번은 반장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백만원짜리 수표 한장을 받고 놀라 그것을 되돌려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들고와 제 어머니에게 건네준 일도 있었다. 그러나 윤회는 그것을 달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었다. 어쨌든 윤회가 그의 제자를 입시브로커에게 소개한 것이 사실이라면 돈을 받고 안방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응분의 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 .
『그건 윤회 잘못만은 아니에요. 모두 다 썩은 세상 탓이에요. 세상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죄다 썩어 있는데 윤회라고 온전할 리 있어요. 게다가 제자를 위해 좋은 일 한번 하려던 것밖에 그 아이가 뭘 잘못했어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더니, 아내는 그렇게 불만을 토로하며 윤회사건을 세상 썩은 탓으로 돌리려들었다.
『세상에 돈이면 안 되는게 뭐 있어요. 돈 가지고 국회의원도사고 대통령도 사려던 세상 아니에요. 그런데 돈 가진 사람, 자식 장래를 위해 일이억 쯤 투자하는 셈치고, 돈 써서 자식 대학 들어가게 하겠다는 부모들이 뭐가 나빠요.』
아내는 가치 판단의 균형감각을 잃고 있었다. 그들, 부정하게 입학하는 아이들로 인해 한정된 정원 밖으로 밀려나 낙방하는 학생들의 장래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표철씨는 그점을 일깨워주려다 그만 두었다. 그때 옆에서 잠자코 듣고있던 둘째가 제 에미 역성을 들고 나왔다. 가장 정의감이 왕성할 나이의 대학 상급생인 둘째도 역시 가족이기주의에 흠씬 물들어 있었다. 미술·음악·연극 등 예술분야의 비평을 해보겠노라 공부를 하고 있는 둘째는 비록 부정입시에 개입되었다 할지라도 제 누나가 영어의 몸이 된 것이 영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래, 엄마 말이 맞아요. 세상이 다 썩었는데 우리만 깨끗하게 살란 법 어딨어요. 보세요. 정치가야 모리배근성 없이 안되고, 장사꾼이야 사기성 없이는 안 되는 것이라니까 그렇다 칩시다. 병든 사회의 정화구실을 해내야 할 예술계까지 썩었으니 세상이 요 모양 요 꼴로 곪지 않을 수 있겠어요.』
둘째는 엉뚱하게 제 전공분야에서 공격의 대상을 찾았다.
『재작년 이었어요.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서양화 부문 대상작품이 글쎄, 어떤 외국 사진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모방을 지적하고 질책하던 사람들이 그 당시 얼마나 무식쟁이로 몰아 붙여진 줄 아세요.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뜯어보아도 모방작이 틀림없는데도 그것을 그린사람과 그 심사를 맡았던 미술평론가 한 사람은 그것이 구미에서는 이미 일반화되다시피 한 혼성모방의 한 기교이니 모르는 사람은 잠자코 있으라고 얼마나 큰소리치며 윽박질렀는지 몰라요. 창조의 고통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것이 실상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탁월한 기교의 실현이라느니, 예술의 장래를 열어가는 선구적 작품이라느니 하며 상찬되고 호도되고 비호되는 꼴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예술가들이 그 모양인데 다른 사람들이야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표철씨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요지인즉, 예술계가 이처럼 썩었으니 세상의 부패와 타락은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는 주장 같았다.
『그때 어느 일간지에서 총대를 메고 비판을 제기했지만 비호세력의 도움으로 그 모방작가는 대상수상이 취소되기는커녕 한술 더 떠 , 그런 모방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 큰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어디 그 뿐인 줄 아세요. 그 몹쓸 병은 전염성이 강했던지 곧 문학판으로 번져 문학판에 남의 글 베껴먹는 풍조가 만연했어요. 남의 글을 그대로 옮겨다 놓고 역시 혼성모방의 기법을 사용 했노라며 유식을 자랑하는 뻔뻔스런 젊은 작가들이 생겼어요. 이놈의 세상이 이렇게 한심스럽게 된 것은 다 그런 예술가들의 반윤리적·몰가치적 예술행위나 작품의 도움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 구요.』
둘째의 기세에 눌렸던지 아내는 다른 말을 더 보태려다 그만 두고 한숨을 거푸 내쉬었다. 둘째의 주장이 아무리 온당하더라도 그게 사회적·법률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무슨 소용이랴. 윤희는 구속이 되었고 실형을 받을 것이 틀림없었다.
표철씨는 다소 우울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버스편으로 지하철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한 이십분을 더 가면 사무실이 있는 충무로에 닿을 수 있었다. 출근시간의 지하철은 어느 때나 그렇듯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뒷사람에 떼밀려 차에 오르기는 했으나 손잡이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했다. 중간에 어정쩡하게 서서 흔들리며 갈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차의 진동에 대비하기 위해 보폭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순간 몇 사람 건너에서 이상스런 불평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요새 세상이 얼마나 우습게 돌아가고 있는지 여러분들도 다 아실겁니다.』
사람들 사이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허수룩한 차림의 할머니가 보였다. 머리는 반 백이었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뒤덮여 있었다.
『며칠 전 테레비 보셨지요. 힘없고. 추운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공빈호를, 힘있고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법 적용으로 밝고 깨끗한 법치사회를 이루겠다고 장담하고, 그리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는데 있어 어떤 성역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법 운용의 최고 책임자얼굴을 보셨지요. 얼마나 순박하고 정직해 보이던가요. 그런데 짐짓 알고 보니 그 당사자가 부정하게 살고 있었다니 한심한 일 아닙니까. 부정이란 무엇입니까. 바르지 않은 것 아닙니까. 자식을 미국 국적으로 대학에 입학시킨 사람을 바른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지요. 게다가 법이란 무엇입니까. 상식과 관습과 윤리와 도덕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윤리와 도덕, 즉 도리에 어긋나고도 바르게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런 인사에게 어찌 국가의 법 운용을 맡겨둘 수 있겠습니까.』
할머니는 미국국적의 아이를 대학에 입학시켜 물의를 빚은 장관의 이야기를 늘어 놓고 있었다.
『여러분, 서울시장은 또 어떻습니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아시겠지만 그 사람한때 정치·경제·사회 정의를 실현한답시고 힘있는 자, 가진 자들을 기회있을 때마다 목소리를 높여 질타했던 사람 아닙니까. 그리고 정치적 희생자들을 돕는 운동을 펼치노라 설치던, 이른바 의로운 법조인 아니었습니까.
그런 사람이 자신은 짐짓 국가의 법을 어기고, 그리고 오백 여평이 넘는 대지에 호화주택을 짓고 살았다니 통탄할 일 아니겠습니까.』
할머니는 계속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옆 사람의 발을 조심하고, 옆 사람의 입김이 얼굴에 닿지 않게 신경을 써야하는 붐비는 차 안에서 다 아는 저런 달갑지 않은 잔소리를 듣고있어야 하다니, 표철씨는 짜증이 났다.
『저런 소음공해 단속하는 승무원은 없나?』
아니나 다를까, 표철씨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았던지 그런 불평소리가 터져 나왔다.
할머니는 그러나 목소리에 더운 기운을 더 보태 열변을 토해놓았다.
『지난번 입시부정사건만 해도 그렇지요. 엠파이언가 뭔가하는 대형 술집을 하던 자가 운영하던 학교를 중심으로 그것이 일어났다 하지 않았습니까.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겨도 유분수지, 원. 우리 국민들 의식전환 없이는 구원 없습니다. 무엇보다 공짜심리·요행심리 버려야 합니다. 요행심리가 부정을 낳고 공짜심리가 부패를 낳습니다. 입시부정사건을 보세요. 그것은 부당하게 돈을 벌어보겠다는 썩은 교육자들과 자신의 노력의 대가 이상을 바란 얌체 학부모들의 합작품이 엮어낸 걸작 아니었던가요.』
『아, 저 소음공해라니, 신문 보면 다 아는 소리 이런데서 또 듣다니.』
또 그런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표철씨도 짜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뭐라고 했습니까. 내 말이 듣기 싫단 말입니까. 아니, 논객들과 문사들만 곧은 소리 바른 소리할 줄 안답니까. 이 늙은 것도 곧은 소리 바른 소리할 줄 압니다. 그래요. 우리 국민들, 의식개혁, 의식 전환 없이는 구원 없습니다. 우리 모두 정신차리고 한 계단씩 내려가 생각합시다. 우리들 생활 한 계단씩 낮추어 꾸려 갑시다. 같은 쓰임새의 물건이라도 만원짜리, 십만원 짜리가 있습니다. 우리 만원짜리로 만족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부패 없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주변 깨끗이 정화시키지 않으면 멸망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 정신차립시다.』
할머니는 매우 열정적인 말투로 외쳤다. 그러나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할머니 잘난 줄 다 알았으니 좀 조용히 갑시다.』
그때 한 사람이 그렇게 핀잔을 주었다.
『아니 , 젊은이. 내가 못할 말했나. 왜 그래?』
『왜 그러나마나, 요즘 그렇지 않아도 세상 인심이 둬숭숭한데, 할머니가 난데없이 복잡한 전철안에서 짜증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듣고 있기 좋겠어요.』
『아니, 예수 전도하는 사람은 아직 누가 핀잔하는 것 내 못 봤어. 우리 사회 썩은 것 좀 덜썩게 했으면 해서 이 노구를 이끌고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타고 이 고생 인데 좀 알아주지 는 못할망정 그렇게 핀잔이나 하긴가.』
마침 차가 멎자 그 젊은이는 내릴 때가 되었는지 곱지 않은 눈으로 할머니를 한번 쏘아보더니 부랴부랴 하차했다.
할머니는 곧은 소리, 바른 소리를 또 이어나갔다.
그러나 표철씨는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할머니는 흔히 신문이나 방송에서 읽고 들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매스컴에서 얻은·정보를 판단근거로 하여 세상을 개탄하고 마침내 그것을 바로잡는데 일조 하겠다는 생각으로 전도사가 신앙을 전파하듯 사람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그런 주장을 펴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돈으로 국민을 다 살 수 있다는 망상에 젖어 대선운동을 펼쳤던 돈 황제의 기행이나, 철새 국회의원들의 작태나, 반 놈팽이 비슷한 갖가지 정치지망생들의 행태나, 정치지도자들의 표리부동한 실체를 지켜본 국민들이 그 할머니와 같은 심정 아닌 사람 어디 있겠는가. 허나 이런 복잡한 전철 안에서 그런 말을 또 듣고 있어야 하다니. 표철씨는 충무로 역에서 차를 내렸다. 할머니의 곧은 소리, 바른 소리를 실은 전동차는 서둘러 역을 떠났다.
『부장님, 상무님께서 찾으셨습니다.』표철씨가 사무실에 들어가기가 바쁘게 미스김이 말했다.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인사건이 불숙 떠올랐다. 어제 사내 인사가 있었을 터였다.『오시는 대로 상무님 방으로 올라오시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상무는 표철씨의 대학선배로 회사내에서 은밀히 그를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상급자였다. 표부장, 서운해하지 마시게.』방으로 들어서자 상무는 그렇게 위로부터 했다. 순간, 표철씨는 하늘이라도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헌데, 표부장은 왜 그렇게 요령부득인가?』
상무는 곧 눈을 치뜨고 표철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뭘, 말씀입니까?』
『김부장은 전무님 가족 생일을 다 외고 있다지 않나. 명절 때 뿐만이 아니라 가족 생일 때도 빠뜨리지 않고 선물을 해왔다는 것일세.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란 그런 정도는 상식이고 기본 아닌가?』
『예, 예?』
『이번에 김부장 한사람만 이사대우가 되었네. 내가 표부장을 밀기는 했으나 표부장은 요령이 없어 업무수행이 원활치 못할 것이라며 전무님께서 일언지하에 그어버리지 뭔가….』 표철씨는 순간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같았다. 그리고 구치소에 구금되어 있을 윤회의 모습과 지하철에서 본 할머니의 모습이 오락가락 망막을 어지럽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