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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시대 -해외명저를 찾아|앨빈 토플러저『제3의 물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앨빈 토플러의 명저인『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은 80년3월 미국 윌리엄머로 출판사에서 처음 출판되었으며, 우리말 번역판은 그 이듬해인 81년1월 학원사에서 나왔다.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이 아닌 외국서적으로 이만큼 빠른 시일안에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책도 당시로서는 드문 경우에 속한다. 그 까닭은 아마도 이 책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지성계와 독자들에게 준 충격과 그에 따른 대단히 좋은 반응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이 출판되자 세계 유수의 신문·잡지들이 서평을 통해 걸작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과 6개월 사이에 5판을 찍는 등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불러 일으켰었다. 그런 바람이 우리나라에도 불어 우리말 번역판이 여러 출판사에서 거의 동시에 쏟아져 나왔으며, 베스트셀러의 수위에 오르자 심지어 번역판의 해적판이 출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큰 독자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일까. 거기에는 몇가지 까닭이 있다.

<6개월새 5판 발행>
먼저 이해하여야 할 점은 당시의 시대상황 또는 시대정신 일것이다. 즉 70년대는 또 하나의 명저인 존 갤브레이스의 저서『불확실성의 시대』가 표상하듯 인류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려운 혼돈의 시대였다. 세계의 각 곳에서 테러가 자행되고, 손댈 수조차 없는 인플레가 맹위를 떨치고, 통화의 불안정 등 세계 경제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안정을 잃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아래서 사람들은 세상이 미쳤다고 단언하고, 전문가들도 세계는 파멸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인류의 미래는 암담해 보일 뿐 길을 찾지 못한 가운데 방황을 거듭했다.
이러한 혼돈속에서 이 책은 세계는 결코 제 길을 벗어나 광기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얼핏보아서는 무의미한 사건들이 잇따라 불협화음을 내지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 배후에는 놀랄만한 경향, 충분히 희망을 갖게 하는 일관된 추세들이 있다는 점을 제시함으로써 인류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갖게 만들었다. 즉 당시 겉으로 보이는 혼돈과 그것에 연유하는 불확실성은 제2의 물결문명으로 지칭된 산업사회가 제3의 물결문명인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당면하는 과도기적 상황으로 파악한 것이다.

<「인간화」힘쓴 흔적>토플러는 이 책에서 여러가지 현상을 분산 파악함으로써 그 큰 뜻을 깨닫지 못하는 이상 이들 현상에 대해 일관적이며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없다고 보고, 오늘의 세계에서 어떤 세력-산업주의의 증언과 새로운 문명의 출현을 다그치는 세력-이 어떻게 부닥치고 있는가에 대해 체계적 기초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마치 폭풍우속에서 위험한 암초 사이를 나침반도, 해도(해도)도 없이 항해하려는 배의 승무원과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다가온 제3의 물결문명이라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우리들에게 제시해 줌으로써 미래를 예비하는 능력을 갖게 만드는데 이바지한 것이다.
토플러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만약 우리가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다면 우리는 동일한 역사를 반복해 살아갈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미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기든지 그것을 그대로 감수하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미래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경우보다 훨씬 사태를 악화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모든 지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미래를 탐사하고 의식화하지 않는 한 미래를 인간화시킬 수가 없다』 이 책은 바로 이같은 관점에서「미래의 인간화」를 위해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제3의 물결』이 독자들로부터 큰 반응을 받게된 또 하나의 까닭은 토플러가 인류문명에 대한 해박한 지식, 명쾌한 문명사관을 토대로 세계 각국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한편 세계를 움직이는 지성인·정치가·기업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눈 풍부한 자료를 활용해 책을 썼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의 관점에 동의하고, 그의 주장에 설득되며,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예증에 경탄할 수밖에 없게된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여러가지 영향을 미쳤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미래학에 대한 관심은 겨우 싹이 트는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제3의 물결』이 번역 소개됨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으로 우리 학계에서도 미래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21세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으며, 각계에서 우리의 미래를 예비하는 작업이 진행되기에 이른다. 또한 이 책의 영향으로 전기통신기술과 컴퓨터가 결합되어 나타날 미래의 문명과 그 속에서 우리의 생활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예컨대 지금은 익숙해진「전자주택」이라는 개념이나 또는「재택근무」등의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뿐만아니라 이 책은 우리나라 기업인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우리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자원 삼아 노동집약적 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기업풍토에 이 책은 첨단기술에 의한 주문생산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하는 경향을 강조한다든가, 또는 기업에 가해지는 환경문제등과 같은 사회적 압력, 다양해지는 순익의 내용과 같은 기업의 존립위기와 관련된 문제등을 제기했을 뿐만아니라 우주산업·해저에의 진출·유전자 산업등과 같은 첨단산업의 장래를 소개함으로써 우리 기업에 미래지향적 안목을 길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기업인들 사이에서 많이 읽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긍정적 시각서 살펴>
한마디로 말해『제3의 물결』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파악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책의 탈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비판하는 소리도 있었다. 민주화가 지상 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당시의 우리사회 분위기에 견주어 볼 때 이 책은 그같은 시대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함으로써 시대의 요구를 희석시킨다는 비판이었다.
저자인 토플러는 이 시대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잡지『포전』의 편집장직을 역임한바 있으며, 코넬대학 등에서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유재천<서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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