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바로 삶 그 자체"|세계적 전위그룹「플럭서스」서울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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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디리리…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4일 오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는 태평가의 굿거리 장단이 낭랑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가락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대에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서양노인이 대걸레를 밀었고, 바닥에 주저앉아 뭔가를 열심히 쓰는 사람도 있었다.
딕 히긴스·에머트 윌리엄스 등 쟁쟁한 플럭서스 예술가 5명이 덴마크 출신 아더 쾨프케의『일하는 사이의 음악』을 공연하는 중이었다.
이날 우리에게 처음 선보인 플럭서스(Fluxus)는 원래「흐름」「끊임없는 변화」를 뜻하는 라틴어로, 지난 61년 리투아니아 출신 건축가 조지 마키우나스가 제창한 새로운 예술관과 그로부터 비롯된 예술운동을 말한다.
이들 플럭서스 그룹은 틀에 얽매인채 일부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기존 예술에 반기를 들고 형식보다는 내용을, 미학보다는 소통을 중시하며 예술과 생활의 이분법적 대립을 해소하려 했다. 이들은 미술·음악·연극·무용 등 기존 예술의 장르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직접적으로 관객과 교류할 수 있는 복합 매체적 공연과 전위적 행위예술을 시도해왔다.
이날 공연은 제목이 시사하듯 일과 노래, 노동과 예술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공연자들은 촌부가 농부가를 부르며 김을 매듯 탁자위의 레코드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태평가 가락에 젖은채 일을 즐겼다. 그러다가 레코드가 헛돌거나 노래가 끊길 때면 누군가 플레이어 바늘을 옮겨 다시 노래를 듣곤 했다.
이들에게 노래(예술)는 연미복을 입고 객석에 앉아 엄숙하게 감상해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일하면서 자연스레 흘려들을 수 있는 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 삶과 밀착한 것이어서 있을 때는 모르면서 없어지면 아쉬워하는 그런 것이었다.
한옆에 놓인 그랜드피아노는 뚜껑이 닫힌채 누구하나 건반을 두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피아노는 예술의 도구가 아니라 먼지를 털어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나중엔 그 위에 잡동사니를 배열함으로써 나름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혀 다른 개념의 예술의 도구가 됐다. 피아노로 상징되는 기존의 귀족주의적, 엄숙주의적 예술에 대한 통렬한 풍자였다.
이날 공연은『예술이란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넓고 자유로운 것이며 삶의 일부』라고 말하고 있었다.
1시간30분짜리 공연이 끝났을 때 관중들이 따뜻한 박수를 보내는 것을 보면서 플럭서스의 메시지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곽한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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