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앞수표 발행 수수료 논란/징수 강행에 현금인출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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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상반기 골격 실명제 취지 어긋나… 고액권 발행 주장/제2금융권과도 마찰… 당좌수표 등 늘려 나가야
자기앞수표 발행수수료를 받자 창구에서 마찰이 생기고 현금을 찾아가는 고객들이 많아 은행들이 현찰이 부족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은행들은 지난달 25일이 월급날인데다 2월28일,3월1일 연휴가 겹쳐 그렇지 않아도 현금수요가 많은 판에 24일부터 자기앞수표 발행수수료를 받음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지만 현금으로 달라는 고객들이 예상보다 많다며 당황하고 있다.
수수료를 받기 시작한 이튿날인 2월25,26일에는 평상시의 두배인 6천9백억원의 현금이 은행에서 빠져나갔다. 일부 지점은 다른 곳에서 현금을 꾸어왔으며 한은은 25,26일 은행권에 7천9백억원의 현금을 긴급 방출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몇번 거론됐지만 인플레심리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수그러들었던 5만원권,10만원권 등 고액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예금자가 자기 이름으로 예금액을 바탕으로 발행하는게 아니라 은행이 발행하고 지급까지 책임짐으로써 신원확인이 어려운 자기앞수표는 상반기중 시행골격이 짜여질 금융실명제와 취지가 어긋나므로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자꾸 늘어나고 있다.
◆자기앞수표=이름그대로 수표발행자와 지급책임자가 같다. 기업이나 개인이름으로 발행하고 은행이 지급하는 당좌수표나 가계수표와는 다르다. 당좌·가계수표는 발행자의 예금에 잔액이 없으면 은행이 지급을 거절할 수 있지만,자기앞수표는 은행이 발행하며 지급 또한 책임진다.
당좌수표나 가계수표는 예금자가 은행에 돈을 주고 수표책을 사다가 자기이름으로 발행하는데,자기앞수표는 은행들이 용지값은 물론 발행과 교환하는데 드는 인건비까지 모두 부담하므로 수수료를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이같은 비용이 장당 평균 5백50원이며 여기에 10년동안 보관해야 하는 경비 등 간접비용까지 합치면 비용이 7백원선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1·26금리인하로 손실이 커지게 된 은행은 서둘러 정액(10만원,30만원,50만원,1백만원권)의 경우 50원씩,비정액 일반수표의 경우 2백원씩 받기 시작했다. 금융계는 미국 등 금융선진국에는 없는 이 자기앞수표를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수표나 법인 당좌수표로 대신하며 점차 줄여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경우 자기앞수표가 있지만 이용이 적은 편이고 장당 5백엔씩의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
◆유통과 보관=지난해 발행된 자기앞수표는 약 11억장. 대형 시중은행의 경우 연간 1억장씩 발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수표의 평균수명은 10만원권이 6.66일이며 고객권일수록 더욱 짧아 1백만원권은 고작 3.7일에 불과하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물량을 빼면 은행당 하루평균 20만장 이상이 창구로 돌아오는데 이중 70% 이상이 10만원권이다. 이들 수표는 어음·수표법 규정에 따라 그날그날 돌아온 수표들을 묶어 10년동안 보관해야 하므로 별도의 창고를 마련한 은행도 있다.
◆1,2금융권 마찰=은행의 자기앞수표 발행수수료 징수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곳은 보험·단자·증권사 등 제2금융권. 이들은 『연간 1백46억원의 수수료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며 반발하고 나섰고,은행들은 『바로 그 돈을 물지 않고 그동안 장사를 잘 했으니 이제 은행에 돌려달라』는 반론을 펴며 징수를 강행했다. 은행권에서 비교적 많은 돈을 끌어다 쓰는 편인 증권사는 은행에 꼬리를 내린 상태며,거액의 고객이 많은 단자사들도 기업과의 입·출금거래때 수수료 부담이 없는 당좌거래를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는 현금인출비중을 늘려 은행을 당황케하고 있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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