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층서 식사중 흔들… 공포의 90분/동양증권 이동호대리 탈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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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기 끊기고 환기통선 검은 연기/타월 적셔 코막고 비상계단 30분 걸려 지상에
사건 당시 트레이드센터 38층 사무실에 입주한 동양증권의 이동호대리(32)는 1시간30분동안이나 사무실에 갇혔다 비상계단을 통해 빠져나왔다.
이 대리가 전한 당시 상황이다.
『낮12시20분쯤 지하매점에서 먹을 것을 구입,동료직원 3명과 식사하던중 건너편 월드 파이낸셜 빌딩에 섬광이 반사되면서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놀랄 사이도 없이 전기와 전화가 끊겼다. 창 밖으로 건물밑 웨스트 사이드 하이웨이를 내려다보니 철구조물과 노란색 가드레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쌍둥이 건물인 제2빌딩 주차장 입구에서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얼굴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조금뒤 사무실안에 있는 환기통을 타고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점점 숨쉬기 힘들어졌다. 종이타월을 물에 적셔 문사이와 환기통을 막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으나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통신용 구내 전화로 경비실에 연락했더니 사무실에 남아있으라고 했다. 비상사태시 지시가 없으면 계단은 이용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아래층에 화재가 날 경우 비상계단은 더욱 위험하기 때문이다.
종이타월로 입을 막고 1시간동안 사무실에서 공포감에 떨었다. 동료직원을 보니 입과 코에 숯검댕이 묻어 새까만 모습이었다.
창밖으로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몰려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헬기가 건물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유리창을 깨려고 경비실에 전화를 했으나 만류했다. 복사기와 팩시밀리 등 사무실 집기에 검댕이 내려앉아 새까맣게 됐다.
동료들과 함께 비상계단문을 열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 위층으로부터 계단 가득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플래시를 가진 사람도 더러 있었다. 물에 적신 종이타월로 코를 막은채 계단을 중간쯤 내려오니 소방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30여분동안 레일을 잡고 계단을 내려와 지상에 도착하자 여기저기 탈진해 쓰러지는 여자들이 보였다.』<뉴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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