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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교훈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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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한·미 자유무엽협정(FTA)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제 한·미 FTA는 양국 의회의 비준 동의를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비준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 일부가 한·미 FTA 반대 의사를 밝혔다. 국내에서도 민노당 국회의원과 일부 대선 주자가 FTA 비준 반대를 외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유럽연합(EU)과의 FTA 협상을 시작했다. 과연 한·미 FTA는 두 나라 의회의 비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반대 목소리는 왜 나오는가. 미국과의 협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눴다.

 
▶강치원=우선 한·미 FTA 결과와 과정을 평가해 보자.

▶김종훈=전반적으로 미국과 대등한 교섭을 벌였다고 본다. ‘개방과 경쟁’이라는 큰 전제 아래 두 나라 모두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도출했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농업 분야를 지키려고 최대한 노력했으나 농업에 종사하는 분 입장에서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평가하는 협상 결과를 낸 것이다.

▶이윤호=한·미 FTA는 우리 경제 성장 과정에서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다. 다만 교육·의료 등 우리의 서비스 시장 개방이 미흡한 점은 어떻게든 보완했으면 한다. 우리는 이 분야가 취약해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해영=이익의 균형에 실패한 불공정 협정이라고 판단한다. 자동차 부문만 봐도 미국은 관세 2.5%를 내리고 우리는 8%나 내리지 않았나. 자동차도 우리한테 실익이 크지 않다고 본다. 또 협상을 진행하면서 정부가 협상 내용을 국회에 잘 알리지 않았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국회와 정부 사이의 권한 배분, 의사 소통 절차 등의 문제도 드러났다.

▶윤석원=농업은 너무 많이 내줬다.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도 관세가 철폐된 뒤에는 거의 대부분 발동할 수 없게 됐다. 우리 농촌은 위기를 맞을 것이다. 농업과 공업, 농촌과 도시가 골고루 발전해야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농촌이 위기를 맞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국회에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에도 공감한다.

▶강치원=농업 이외의 득실은 어떤가.

토론 참석자들은 한·미 FTA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과 비준 가능성에 대해 토론했다. 왼쪽부터 윤석원·이해영·강치원 교수, 김종훈 대표, 이윤호 부회장.[사진=최승식 기자]


▶김종훈=우리는 미국과의 공산품 교역에서 한 해 120억 달러 흑자를 낸다. 미국의 평균 관세가 3.5%인데, 우리 제품에 대해서만 이를 없애면 그만큼 가격경쟁력을 더 갖추게 된다. 대신 미국도 가져간 게 있다. 처음부터 농산물 시장에 관심을 드러냈다. 그쪽에서 얻을 것은 얻고, 줄 것을 줬다. 이익의 균형에 실패한 게 아니다. 그리고 국회에 보고를 잘 하지 않았다지만 최근 1년간 국회에 25번 보고했다. 30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자료를 국회에 보고하고 언론에 공개한 협상은 처음이었다.

▶이해영=우리는 교역 흑자의 70%가 자동차에서 나온다. 하지만 2009년 기아자동차 조지아주 공장이 완공되면 현대·기아차는 한 해 60만 대를 미국 현지에서 만들어 공급하게 된다. FTA의 결과로 자동차 수출이 크게 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반면 우리는 평균 미국의 세 배인 관세를 없애게 된다. 시장을 활짝 열었다. 결국 이번 FTA로 4, 5년 뒤에는 대미 교역에서 우리가 적자를 내게 될 것이다.

▶이윤호=미국의 관세 철폐 효과가 결코 작지 않다. 우리 경제를 샌드위치 상황으로 만든 중국이나 일본은 쉽사리 미국과 FTA를 맺을 수 없다. 우리에게 그만큼 시장 선점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또 시장을 개방하면 우리 제도가 글로벌화하고 더 투명해질 것이다. 한·미 FTA의 핵심이 바로 ‘투명성 제고’라고 본다.

▶김종훈=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다. 다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의 보고서를 보면 고용·성장·투자 모두 ‘플러스(+)’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법률시장 개방을 예로 들어 보자. 그쪽 로펌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사무실을 빌리고 집기를 사기 위해 여기에 돈을 쓴다. 또 우리 법률가를 고용해야 한다. 국내 로펌들이 그들과 경쟁하면서 강점을 배우는 학습효과도 있다.

▶이해영=로펌 고용 얘기인데, 그건 다른 데서 일하던 사람을 데려다 쓰는 것이지, 일자리 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강치원=한·미 FTA의 이해득실을 많이 따져봤다. 국회는 이를 비준해야 하나.

▶이해영=한·미 FTA는 해야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중국·일본·EU와의 FTA까지 동일선상에서 놓고 어떤 것을 먼저 할지 따져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윤호=한·미 FTA는 지금이 적기다. 조금 전에 언급한 시장 선점 효과를 간과할 수 없다. 또 한·미 FTA는 한때 삐걱거렸던 한·미 관계를 회복시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서둘러야 한다. 일본·중국 등과의 FTA를 놓고 순서를 저울질해야 한다는데, 일본과 FTA를 하면 우리 부품·소재 산업이, 중국과의 FTA에서는 농업이 큰 타격을 받는다. 우선순위에서도 미국과 먼저 하는 게 적절한 선택이다.

▶윤석원=현 정부는 ‘동북아 경제권’을 강조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미국이 먼저가 아니다. 중국과 FTA한다고 우리 농업이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이미 중국 농산물은 들어올 대로 다 들어와 있다. 축산과 과수 농가가 피해를 볼 수도 있지만, 이 분야는 위생문제 때문에 중국 농산품이 많이 팔리지 않을 것이다.

▶김종훈=FTA는 국민적 합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일본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이 어느 정도 배타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그들과 FTA하기가 쉽지 않다. 또 한·미 FTA가 동북아 경제권 구상과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 우리와 FTA를 한 데는 중국을 겨냥한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목적도 있다. 중국은 각종 제도가 취약해 투자하기가 쉽지 않으니, 가까운 한국에 투자해 사업 기지를 세워 발판을 마련하고 중국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동북아 경제권 구상과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윤석원=농업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 때문에 비준에 반대한다. 지난달 말 정부가 대책을 내놨다. 어떤 농산물 생산액이 20% 떨어지면 정부가 피해를 보상해주기로 했는데, 이는 단순히 가격이 떨어지면 보상을 해주던 칠레와의 FTA 때보다 후퇴한 것이다. 보다 강력한 보상 대책을 만든 뒤에 비준해야 한다.

▶강치원=한·미 FTA 협상을 하면서 국회에 소상히 알리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이해영=이 기회에 ‘통상절차법’을 만들어 협상을 하면서 어떤 단계에서 국회에 어떤 보고를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정부는 한·미 FTA 협상 막바지에 합의문을 국회에 툭 던지고서는 비준하라는 식이다. 또 국민들에 대해서도 일방적으로 FTA를 홍보만 한다. 그보다는 이해득실을 냉철히 따지는 토론의 장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김종훈=상대와 협상을 할 때 단계마다 국회 동의를 받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보고를 상당히 많이 했다. 정보 보호의 문제도 있다. 미 행정부는 국회에 정보를 공개하고, 국회는 이를 철저히 보호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잘 안 된다. 그 때문에 우리의 협상 전략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노출되면 제대로 협상을 할 수 없다.

▶강치원=앞으로 우리가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이해영=갈수록 교역과 통상이 시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그러나 우리의 통상 관련 법과 제도는 1960년대 가발과 신발을 수출하던 때 그대로다. 통상절차법 같은 시스템이 없으니 정부가 협상을 하면서 국회와 시민단체 등에 정보 공개를 소홀히 하고, 그러니 국민적 공감대를 널리 얻지 못해 비준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이윤호=보완할 점과는 다른 얘기지만, 무엇보다 국회 비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비준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개방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미 행정부 측은 한국이 앞서 비준하는 게 그쪽 비준에 “큰 도움(very helpful)”이 될 것이라고들 한다. 우리가 먼저 국회 비준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종훈=한·미 FTA가 100점짜리는 아니다. 하지만 경제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활용할 요소는 있다. 기업 같은 경제 주체들이 한·미 FTA를 기회로 삼아 경쟁력 강화에 더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한다. 농업 피해 같은 한·미 FTA의 부작용도 있지만, 그건 보완대책을 세워 해결해야 할 일이지 그 부작용 때문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윤석원=한·미 FTA를 계기로 농업 정책을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한다. 우리는 ‘농업 경쟁력’만 늘 내세운다. 하지만 선진국은 경쟁력과 보조금 정책을 함께 가져간다. 보조금을 늘리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어려서부터 농촌과 생태를 체험하면서 농촌에 대한 친숙함을 갖게 해야 한다.

정리=권혁주 기자<woongjoo@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