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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감독 여교수 학·석사 학위도 가짜 의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2007 광주 비엔날레'의 공동 예술감독에 선임된 동국대 신정아(35.여.사진) 교수가 박사학위를 조작한 사실이 확인된 데 이어 학사 및 석사학위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본지 7월 9일자 12면).

이상일 동국대 학사지원본부장은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미술계에서 신 교수의 이력에 대한 의혹이 제기돼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는 캔자스 주립대학에 사실확인을 요청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어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예일대에서는 이미 신 교수의 학위가 가짜임을 밝혀왔다"고 덧붙였다. 예일대 측은 신 교수가 예일대 학생으로 등록한 기록도 없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캔자스 주립대 측은 국내 언론의 질의에 "신씨와 이름과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이 1992년부터 96년 가을학기까지 등록했으나 96년 학부 3학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등록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신 교수는 '대학 중퇴자'의 학력을 '박사'로 속이고 강단에 선 셈이다. 그는 가짜 학력을 발판으로 현재 동국대 조교수 외에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문화관광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추천위원, 하나은행 문화 자문위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해 왔다.

◆'날개 없는 추락'=신씨의 이력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미 뉴욕 현대미술관의 인턴십을 거쳤다는 그는 97년 금호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국내 미술계에 등장했다. 2002년까지 주요 미술대학원 강사를 겸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는 유명 전시회도 기획했다. 지난해에만 '존 버닝햄 40주년 기념전' '김세중 조각상 20주년 기념전' 한.불 120주년 기념 '알랭 플래셔' 등 굵직한 미술전을 소화해 냈다.

5일에는 30대 여성으로는 이례적으로 우리나라 최대 미술전시회 중 하나인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에 선임되기도 했다. 비엔날레 사무국 측은 "신씨 선임은 실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중책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선도적 사례"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런 신씨의 이력 중 상당수가 거짓이거나 본인이 부풀린 것이었다. 98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한 특별전이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평을 받자 신씨는 "내가 기획한 것"이라며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러나 이 미술전은 미술관 측이 다른 큐레이터에게 외주를 맡긴 것이었다. 신씨가 광주비엔날레 사무국에 제출한 이력서에 기재한 현재 직함 중 대우건설 문화 자문위원 자리도 거짓이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신씨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적이 없을 뿐더러 '문화 자문위원'이라는 자리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꾸며 낸 가짜 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2005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시와 공부가 겹치면 무척 힘들었다"며 "종종 교수와 직접 토론하기 위해 미국에 가느라 항공료 지출이 많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이 같은 '튀는 행보'가 학력 위조를 밝히게 한 단초가 됐다. 그는 평소 주변 사람에게 "서울대 동양화과에 입학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접한 미대 교수들이 신씨 이력에 대한 확인을 시작했고 결국 위조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본지는 파리에 출장간 신씨에게 전화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앞선 8일 통화에서는 "이미 동국대 차원에서 검증이 끝났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었다.

◆"교수 임용과정 문제 있다"=신씨 학위에 대한 의혹을 처음 제기한 동국대 전 재단 이사 장윤 스님은 "신씨의 교수 임용 과정도 정상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신씨는 2005년 9월 이 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장윤 스님은 "신씨의 전공 과목이 미술대학에 없어 임용 직후 한 과목도 배정받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곧바로 6개월 휴직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한 미대 교수는 "신씨의 주요 활동 분야가 미술평론과 미술기획이라 미대 교수들의 평가를 거쳐야 했지만 이런 과정 없이 특채로 들어왔다"고 지적했다. 신씨는 다음 학기에 교양교육원으로 소속을 옮겼다.

이에 대해 동국대 관계자는 "당시 신 교수의 자질을 상당히 우수하다고 판단했고, 우수 인력을 교원으로 붙잡기 위해서는 휴직 처리를 한 다음에 임용할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권호.강기헌 기자

◆큐레이터(Curator)란=고등 교육기관에서 일정한 교육을 받고 박물관.미술관에서 재정 확보, 유물 보존 관리, 전시 기획 및 진행, 홍보 등의 활동을 하는 학예연구관을 말한다. 한마디로 박물관 .미술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처리하고 수행한다. 이와 달리 상업 화랑에서 작품의 거래를 담당하는 사람은 딜러, 전시 기획 및 홍보를 총괄하는 직원은 디렉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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