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지혜'가 넘치는 한해 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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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성공리에 분리 수술을 마치고 귀국한 샴 쌍둥이 자매 사랑과 지혜.

'이천사(2004)'년은 말 그대로 올해로 두살이 된 이 '두명의 천사'들의 해다. 자칫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었던 어려운 수술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재활 치료를 위해 귀국 직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지만 검사 결과가 좋아 2주만 있으면 퇴원해도 좋다는 담당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지난 2일 병원에서 만난 사랑.지혜 자매는 이제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두 다리로 일어나 방문객들을 맞이할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병동 전체의 귀염둥이가 돼 있는 사랑.지혜의 부모 민승준(34).장윤경(32)씨는 "제각기 보채는 아이들을 달래다 보면 '언제 얘네들이 붙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며 "보통의 쌍둥이 부모로 보내게 될 이번 한해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사랑.지혜 자매가 싱가포르 래플즈 병원에서 분리수술을 받은 것은 지난해 7월. 수술 경과가 좋아 현지에서 석달 동안만 추가 치료를 받은 뒤 귀국했다. 수술받기 직전 이란인 샴 쌍둥이 라단.랄레 비자니 자매가 같은 병원에서 분리수술을 받다 사망한 터라 이들의 수술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민씨 가족에겐 연달아 좋은 소식만 전해졌다. 첫째 희소식은 병원비. 민씨 가정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재활병원 측에서 입원비.검사비 등을 할인해 줬다. 그마저 연세대 사회사업팀과 한국어린이보호재단에서 대주기로 했다.

이와 함께 병원 측은 사랑.지혜의 평생 검사.치료비를 일정 부분 지원해 주기로 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선 전국 각지에서 카드와 선물이 쇄도했다. 어느 유모차 제조업체 사장은 이들을 위해 특별제작한 쌍둥이 유모차를 보냈고, 한 유아용품 의류업체선 사랑.지혜가 겨울을 날 내의.이불.외출복 등을 제공했다. 이 업체는 수술 전 입을 만한 옷이 없었던 두 자매에게 특별히 디자인한 바지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요즘 민씨 부부는 얼마 전 발생한 이란 대지진 참사와 관련, 사랑과 지혜의 이름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수술을 받기 전인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났던 비자니 자매와의 인연 때문이다.

비록 수술 중 숨졌지만 사랑.지혜보다 더 힘든 상황임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그들의 모습은 민씨 부부가 수술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두 딸의 치료 때문에 운영하던 구멍가게까지 처분하는 등 자신들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민씨 부부는 장애 아동들과 앞으로 태어날 샴 쌍둥이들을 꾸준히 돕기로 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새 삶을 얻게 된 사랑.지혜가 이제는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민씨 부부의 새해 소망은 소박하다. '평범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다. 더이상 언론의 조명을 받을 필요도 없는 평범한 쌍둥이 딸에게 평범한 아빠.엄마가 되는 게 이들의 소망이다. 장씨는 "또 하나 소망이 있다면 그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의 가정에 '사랑과 지혜'가 넘쳐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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