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 불참” 민주당의 속뜻/노재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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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무래도 싸움터를 잘못 골랐다는 느낌이다.
민주당은 22일 최고위원회의·의원총회를 열어 「용공음해 사과 및 진상조사특위」 구성제안을 민자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25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의원총회 발언에서 나온 불참이유는 이렇다.
『대통령의 취임이 정치발전에 도움이 안되는 경우 야당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다해 대처해야 한다(한화갑의원)』『한국정치사에서 용공음해가 없어지는 풍토를 만들기 위해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박지원대변인)』
이같은 주장들에 대해 반론과 우려도 적지 않았다.
『취임식에는 참석해야 한다. 대선결과에 승복했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총리·감사원장 임명동의안과 연계해야 한다(신기하의원)』
『취임식 보이콧은 좋지 않다. 며칠전 클린턴 미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냈을 때 공화당이 경제정책에 굉장히 반발했다. 그러나 교서를 읽었을 때는 공화당의원들도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박수친 직후에 토론장에서 논리정연하게 반대의견을 폈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조순승의원)』
『너무 극약처방이다. 불참한다고 취임식이 안열리나. 효과도 없고 부정적 영향만 오래 간다(박상천의원)』
의원총회는 논란끝에 최고위원회의의 불참결정을 수용했다. 한 최고위원은 『용공음해에 대해 최소한 「해명」이라도 있어야 했다』며 『우리도 옹졸하다는 욕을 듣겠지만 문민정부라는 저쪽도 모양이 좋을 건 없다』고 민자당에 대한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간부는 『22일 아침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세지더니 취임식 불참이라는 혹이 하나 더 붙었다』며 『전당대회 경선을 앞둔 선명성 경쟁이 아니겠느냐』고 진단했다. 멀리있는 「김심」을 향한 「구애」의 몸짓들이란 얘기다.
구태여 선명성 경쟁이 아니더라도 「용공음해」문제에 관한 한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 것이 민주당의 분위기다. 그만큼 「김심」의 영향력은 확고하다. 그렇다면 당지도부는 당내 여론을 적절히 조절·가감하는 수도꼭지 역할을 포기하고 영합에만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지,공략대상이 민자당 아닌 전당대회 표밭은 아닌지 물어 볼 일이다. 22일 오후에 만난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아마 김대중대표라면 회의 막바지에 달리 결정을 내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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